「월터·리프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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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AFKN「텔리비젼」에서 지난달까지 방영되던 연속「드라마」에 「매쉬」라는 게 있었다.
한국전쟁 중 어느 전선의 미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코미디」다. 여기에는 한국군인이며, 민간 피난민 군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녹음된 말들을 가만히 들으면 사람들은 한국말이 아니라 중국말을 하고있다. 아마 「할리우드」에서 제작할 때 중국인 「엑스트러」들을 쓴 모양이다.
그러나 미국의 시청자에게는 그들이 한국인이 아니라 해도 별 상관이 없다.
「텔리비젼」에서 한국인이라면 그렇게 믿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텔리비젼」을 비롯한 「매스·미디어」는 모든 것에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스테레오·타입」에 맞춰 나간다.
이런 「스테레오·타입」이론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 「월터·리프먼」이었다. 그는「매스·미디어」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인식자체가 「스테레오·타입」적인 것이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14일, 「미국의 양식」이라는 그 「리프먼」옹이 별세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권위 있는 언론인으로 알려진 그는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고, 세 번이나 「최고외신해설상」을 받았다.
「하버드」대학 철학과를 나온 그는 단순한 시사평론가만은 아니었다. 『현대의 인간은 두개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나는 실물의 세계며, 또 하나는 「카피」(복제)의 세계다. 』-이렇게 그는 명저 『퍼블릭·오피니언』에서 말한 일이 있었다.
복제라는 것이 실물과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실물의 『이지러진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의 대중은 복제의 세계에서만 살고있다. 그것은 「매스·미디어」의 시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본 그는 일종의 비관론자였다.
그는 「밀즈」「리스먼」과 함께 「엘리트」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파워·엘리트」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게 「W·밀즈」의 주장이었다. 여기에 맞서서 「리프먼」은 「엘리트」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에 의하면 미국엔 그저 선동가적 지도층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존슨」행정부를 끈질기게 물어뜯고 월남전에 반대했던 까닭도 사실은 이런데 있었다.
결국 그는 한평생을 두고 활동무대가 되던 「워싱턴」을 쫓겨났다. 그것은 반자의적인 것이기도 했다. 대중사회의 출현은 고전적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키고 만다. 이렇게 그는『퍼블릭·오피니언』에서 밝힌 적이 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그의 예언은 지금 그대로 적중되어가며 있다. 아마 그것을 누구보다도 서글퍼한 것이「리프먼」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갔다. 그와 함께 저물어가는 한 시대에 대한 만가를 우리도 불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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