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YTL정 침몰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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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난사고는 바다를 경시하는 풍조 때문에 일어납니다-.』 경남 충무시 어업협동조합 소속 유조선 한창호(28t선장 박민석씨(38·충무시 명정동28)는 지난 2월 22일 상오 10시쯤 충무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군 YTL정 침몰사고도 1백 명이 타기 어려운 배에 3백 16명을 태우는 등 바다 앞에 겸허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탓했다.
박씨는 그때의 사고를 눈앞에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선원 2명과 함께 물에 빠진 해군신병 47명을 구조, 수훈을 세운 사람.
사고당시 한창호는 통영군 욕지도 남쪽에서 어로작업을 하고있는 선박에 해상 급유를 하기 위해 충무어협의 급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있었다.
YTL정은 한창호 앞을 전속력으로 달려 정박중인 LST함에 접근, 오른쪽으로 급선회하는 찰나 갑판이 복원력을 잃고 기울어 졌고 병사들은 쏟아지듯 바다에 떨어졌다.
출항을 하기 위해「엔진」을 걸어놓고 있던 박씨는『악』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현장으로 배틀 몰았다.
바다는 물에 빠진 신병들과 이들이 벗어 던진 탄띠·외투 등이 범벅이 돼 사람과 물체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
「로프」를 던지자 군화를 벗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던 신병 7∼8명이 기어올랐다.
박씨는 기관장 강명덕씨(35)와 조리원 이상근군(20)에게 갈고리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로프」는 강씨 등에게 말기고 박씨는 갈고리를 바다에 던져 병사들의 옷에 걸어 끌어올렸다. 기운을 잃은 병사들은「로프」조차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구조자는 27명이나 됐다. 박씨는 우선 구조한 사람의 안전을 위해 이들을 모함에 인계했다.
배는 완전히 뒤집혔다, 하늘을 향한 선복 위에서 헤엄쳐 살아난 20여명이 또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박씨 등 3명이 이들을 모두 구조했을 때야 충무항에서 경비정이 출동했고 은광호(5t)등 선박이 인근에서 모여들었다.
박씨는 기진맥진, 두 번째 구조한 20명중 14명을 모함에 인계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6명은 통영 적십자병원으로 옮겼다. 소란스럽던 바다는 1백 59명의 인명을 앗아간 뒤 잠잠해졌다.
이 사고로 해군참모 총·차장이 바뀌고 김해 해군교육단장과 신병훈련소장이 직위해제 됐으며 훈련소 대대장 등 장교 3명이 구속,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진해 해군신병훈련소는 창설이래 계속해온 충렬사 참배를 중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비통했던 것은 유족들의 울부짖음.
『누가 배를 몰았기에 내 자식을 죽였느냐』는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사고가 수습된 뒤 신임 황정연 해군참모총장과 김종곤 통제부 사령관이 박씨를 찾아 금일봉을 전달하고 표창하겠다고 말했을 때, 박씨는 이를 한사코 거절했고 억지로 놓고 간 사례금 2만원은 그날로 고아가된 박성도 정장의 유족 5남매에게 전했다는 것.
박씨에 의해 구조된 김모 훈병의 형은 동생의 생명을 구한 은인을 초청했으나 박씨는 이틀 거절할 만큼 외곬이었다.
삼천포 중학을 졸업하던 17세 때부터 배를 타고 바다에서 살아온 박씨가 바다에서 목숨을 구해준 건 이번이 두 번째. 19세 때 화물선 이영호(19t)의 선원으로 경남 남해군 이동면 미조 앞바다를 항해하다 폭풍을 만났을 때 3백m 앞에서 돛단배 1척이 뒤집혔다.
박씨는 자신이 탄 배가 위태로운 지경이었으나 선장을 설득, 어부 6명을 모두 구했다면서 21년간 바다에서의 무사고 비결은『바다를 경건하게 대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마산=신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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