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커진 롱숏펀드, 해외로 판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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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중위험·중수익’ 상품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롱숏펀드가 영토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펀드 수와 규모도 늘고 있지만 운용의 무대도 국내 증시를 넘어 아시아로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롱숏펀드는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주식은 일찍 사고(long), 내릴 것 같으면 미리 팔아(short) 차익을 챙기는 펀드다. 시장 상황이 어떻게 가더라도 일정한 수익을 내는 게 목표다. 이른바 ‘대박’보다는‘중박’을 노리는 전략이다. 지난해 이후 코스피가 좁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흐름이 지속되자 대안상품으로 떠오르며 시중의 투자자금을 끌어모았다. 이에 따라 펀드 수는 2012년 말 11개에서 현재 20개로, 설정액은 1773억원에서 1조828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국내를 벗어나 아시아 주요 시장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유가 있다.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가 늘어나면서 좁은 국내 시장에서 수익률을 올려줄 종목들의 조합을 만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중소형주를 중심으로 운용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대형주에만 매달리자니 수익률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진다. 아무래도 중소형주보다는 주가 변동성이 작아서다. 그렇다보니 일부 종목에 매도와 매수가 몰리면서 수익을 나눠 먹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업계에선 수익률의 하향 평준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흘러나왔다.

 이런 딜레마를 일본·중국 증시로 투자 대상을 넓혀 타개하겠다는 게 운용사들의 전략이다. 18일 KB자산운용은 한국과 일본의 주식에 투자하는 ‘한일 롱숏펀드’를 출시했다. 그간 외국 운용사의 상품을 재간접 형식으로 들여온 경우는 있지만 국내 운용사가 직접 운용하는 해외 롱숏펀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정병훈 부장은 “한국과 일본에는 겹치는 산업이 많아 이를 활용하면 투자 기회가 더 다양해진다는 점에 착목했다”며 “예컨대 정보기술(IT) 업종의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와 소니를, 자동차 업종에선 현대차와 도요타를 조합으로 운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신한금융투자도 최근 ‘아시아포커스 롱숏펀드’를 내놨다. 한·중·일 3국에 펀드 자산의 80%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미국, 유럽, 기타 아시아 국가에 투입한다. 한·중·일에 집중하는 건 세 나라의 증시가 열리는 시간이 겹쳐 하나의 시장으로 놓고 운용할 수 있는 데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앞서 하나UBS자산운용도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 주로 투자하는 ‘글로벌 롱숏펀드’를 선보였다.

 롱숏펀드가 급속히 몸집을 불리면서 부족해진 건 투자할 종목만이 아니다. 연초부터 운용업계에는 매니저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다. 롱숏펀드 열풍을 몰고 온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스타 매니저인 김주형 본부장은 최근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옮겨갔다. KB운용의 정병훈 부장도 하나UBS운용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다 지난달 둥지를 옮긴 경우다.

 증시에서도 롱숏펀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올 들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주가의 양극화’가 그렇다. 같은 업종이라도 어떤 종목은 신고가를 경신하는 반면 또 다른 종목은 신저가로 떨어지는 식이다. IT업종의 SK하이닉스와 LG전자가 대표적이다. 오를 만한 종목은 사고, 내릴 것 같은 종목은 주식을 빌려 미리 파는(공매도) 롱숏전략이 유행하고 있는 영향이란 분석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도 이런 흐름을 참고해 투자전략을 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남룡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횡보하면서 오르는 종목은 더 오르고, 빠지는 종목은 더 빠지는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단순히 주가가 많이 떨어진 주식보다는 외국인과 기관이 사들이고 있는 핵심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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