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억 쓴 서울 친환경유통센터 놀릴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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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시 관내 학교에 급식 농산물을 공급하는 친환경유통센터를 놓고 서울시와 시 교육청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농산물 공급방식을 놓고 무상급식 ‘제2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이병호 사장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친환경유통센터의 농산물 공급가격을 올해 1학기부터 인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최소 수준의 운영비를 제외하고는 수익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설립된 친환경유통센터(이하 센터)는 급식 식재료 납품업체를 선정해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학교에 급식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한 해 매출이 1300억원에 이른다.

 시 산하 공기업이 수익을 포기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건 그만큼 다급해서다. 센터와 농산물 공급계약을 맺은 학교 수는 현재 39개에 불과하다. 이는 서울시 전체 학교의 3%밖에 안 된다. 지난해 시 관내 초·중·고등학교 중 센터를 통해 농산물을 공급받는 학교는 867개교(전체 66%)에 달했다. 불과 몇 달 만에 계약을 맺은 학교가 20분의 1로 확 줄어든 셈이다.

 원인은 시 교육청이 지난해 11월 급식 식재료 구매 시 각급 학교의 수의계약 범위를 1000만원 이하로 통합하는 내용의 지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센터와 민간 업체에 동일한 계약 기준을 적용해 학교의 선택권을 넓히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배경엔 무상급식을 둘러싼 문용린 현 교육감과 곽노현 전 교육감의 인식 차이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곽 전 교육감은 무상급식을 시행하면서 센터와는 2000만원까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사실상의 특혜를 줬었다.

 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개입하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시의회 민주당협의회(대표 양준욱 의원)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택권을 확대한 것이라는 교육청의 설명과 달리 구매방식을 강요한 것”이라며 “이는 문 교육감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갈등 속에 시가 송파구에 건설 중인 제3유통센터 활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올해 6월 송파 제3친환경유통센터를 완공해 급식 농산물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공사비로만 15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센터와 계약을 맺은 학교가 줄어 이러한 계획에 발목이 잡혔다. 유통센터가 완공되더라도 건물을 비워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각에선 시가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무리하게 센터 건설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의회 최명복 교육위원은 “무턱대고 시설을 늘린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센터 건설이 확정된 2012년에는 학교들의 계약 요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센터 운영을 놓고서도 잡음이 발생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지난해 3월 자체 감사를 벌여 센터의 학교 급식 자문위원회 운영을 종료시켰다. 자문위원회에는 무상급식을 추진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었다. 감사원은 조만간 센터 운영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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