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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총장 추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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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4년 1월 30일자 26면>
삼성 사건이 보여준 한국의 갈등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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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는 전국이 전국으로 모이는 특별한 사회 의식(儀式)이다. 남녀노소, 빈부, 보수·진보, 고·저 학력 가릴 것 없이 모든 가족이 모인다. 이런 회동에서 한국 사회가 한번쯤 생각해 볼 화제가 있다. 비판을 받고 유산된 삼성의 대학총장 추천제다. 삼성은 ‘뜻하지 않았던 논란’이었으며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삼성의 실책으로 치부하면 그만일까.

 삼성과 세계 1위를 다투는 미국 애플이 같은 제도를 내놓았다 치자. 하버드대부터 지방 주립대까지 추천 인원을 삼성처럼 나누었다 치자. 미국에서도 반대가 이처럼 거셌을까. 아니다. 미국선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두 나라는 다르다. 미국엔 지방 소외나 지역 감정이 한국처럼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니 단순비교는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점도 크다. 두 나라 모두 대학 서열이 있고 두 기업 모두 자율성이 보장된 사기업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도 삼성에 쏟아진 비난은 합리적 정도를 넘은 게 아닐까.

 이번 사건은 기업의 자율성에 대한 중요한 시험이다.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유·무형의 비중으로 보면 물론 삼성은 ‘완전히 자유로운 사기업’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질서에 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라면 삼성에도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단체, 호남에서는 이 ‘보편적 질서’를 문제 삼았다. 일개 기업이 공개적으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영남에 비해 호남을 차별했다는 것이다. 서열이라는 사실은 맞다.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순위로 삼성은 서열을 정했다. 그리고 호남에 비해 영남권의 추천 인원이 많은 것도 맞다. 하지만 이미 언론사 등 많은 기관에서 대학 서열을 매기고 있다. 고교생은 더 열심히 공부해 서열이 앞선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고, 서열을 근거로 인생을 설계하며, 서열을 극복하려 노력도 한다. 총장 추천제는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연간 20만 명이 몰리는 ‘삼성 입사고시’ 과열을 막고, 총장 등 교수진의 권위를 살려 면학 분위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학교마다 제도를 잘 활용하면 ‘사회적 약자’에게 힘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 승자는 없다. 우리 모두 패자다.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는 온갖 프레임들이 한꺼번에 난무한 점이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지역 감정 프레임, 남녀 평등 프레임, 대학 서열화 프레임을 갖다 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따로 없다. 침대보다 짧으면 사지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죽이는 독단적 사고방식이 판쳤다. 이런 곳에서 변화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는 이번 삼성 사건 같은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기업이나 단체의 실험을 사회가 포용하는 것도 발전 아닐까. 한국 사회는 표면장력으로 팽팽한 갈등의 비눗방울 같다. 솔잎으로도 빵 터진다. 솔잎도 문제지만 비눗방울도 문제다.

한겨레<2014년 1월 28일자 35면>
삼성의 '대학 추천 할당제' 재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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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올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적용하기로 한 ‘대학총장 추천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삼성이 대학별 추천 인원을 할당함으로써 대학 서열까지 매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대학별·지역적 차별을 두었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런 비판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삼성은 사려 깊지 못한 채용방식 변경으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된 만큼 어떤 식으로든 해소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삼성이 대학별로 총장 추천 인원을 차등적으로 할당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취지야 어떻든, 삼성이 대학별 서열을 매기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채용시장의 슈퍼갑인 삼성이 어느 대학에 몇 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는 것은 삼성이 그 대학을 그만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학의 서열구조는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를 왜곡하는 주범으로 지탄받아왔다. 삼성 같은 초일류기업이 이런 서열구조를 깨뜨리는 데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강화하는 쪽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꼭 총장 추천을 받고 싶으면 학점이나 인성 등 기준을 제시하고 학교 쪽에 재량껏 추천하게 하되, 대학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추천하면 탈락시키면 될 일이다.

 논란이 더욱 커진 것은 할당된 추천 인원이 대학별,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대학’인 성균관대가 가장 많은 115명을 할당받고, 여자대학과 호남지역 대학들의 할당 인원이 적은 것은 이런 논란을 부채질했다. 삼성은 이공계 인력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구분했다고 하지만 그 기준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삼성은 총장 추천을 받더라도 서류전형만 면제해 줄 뿐이기 때문에 총장 추천이 곧 입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면서까지 대학총장 추천제를 도입하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직무적성검사 응시 인원을 줄이는 게 목적이라면 삼성이 모든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을 해 적성검사 응시자를 최소화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총장 추천제로 인한 대학 서열화 문제를 피하려면 그룹 공채가 아니라 각 계열사가 각 대학의 관련학과에 추천을 의뢰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과 같은 총장 추천제는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삼성이 대학 서열까지 매기는 결과로 이어지고, 할당 인원 확대를 위해 대학이 삼성에 매달리는 등 온갖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재고하기 바란다.

논리 vs 논리
중앙 “기업 채용 자율성 줘야” 한겨레 “대학 서열화 안 돼”

‘88만원 세대’는 비정규직 청년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이탈리아 청년의 경제적 상황을 담은 2005년 소설 『천 유로 세대』에 빗대 박권일과 우석훈이 쓴 책 제목에서 유래했다.

 청년세대에 가장 절실한 것은 안정적 일자리다. 2013년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이 8%에 이르며 고용률은 39.7%까지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문 탐구와 비판 지성의 산실이어야 할 대학이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취업준비 기관 구실을 한다.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제’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 해 대학 졸업생 3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른다. ‘삼성 고시’라고 불리는 이 시험을 위해 사교육까지 받는 상황이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를 개선하고 과열 양상 방지를 위해 삼성은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 제도의 일환으로 ‘대학 총장 추천제’를 내놓았다. 전국 대학 총장에게 추천권을 부여해 추천권을 받은 지원자는 서류전형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삼성 의도와 달리 이 제도는 많은 사람에게 대학 서열화로 받아들여졌다. 대학별 할당 인원이 발표된 이후 논란이 가중됐는데, 이는 할당 인원에 대한 삼성의 기준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결국 삼성은 대학과 취업 준비생·정치권·지역 등의 반발로 새로운 채용시스템을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 유보 발표 이전에 나온 한겨레의 사설과 발표 이후 나온 중앙일보의 사설은 이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한겨레는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대학의 서열구조를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대학 총장 추천제 재고를 요구한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대학 총장 추천제가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실험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추천 인원을 할당함으로써 대학 서열까지 매기고 있는 것과 대학별·지역별 차별을 둔 것이 논란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나 질서에 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라면 삼성에도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겨레는 대학별·지역별로 할당된 추천 인원에 상당한 편차를 보였기 때문에 논란이 커졌고, 특히 여자대학과 호남지역 대학들의 할당 인원이 적은 점이 논란을 부채질했다는 점을 들어 삼성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지역 감정, 남녀 평등, 대학 서열화 등 우리 사회의 온갖 프레임이 한꺼번에 난무한 점이 뼈아픈 대목이라고 분석하며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지적한다. 한겨레가 삼성 쪽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면 중앙일보는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에게 논란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두 사설 모두 대학별 서열화는 인정하면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 한겨레는 대학의 서열구조가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를 왜곡하는 주범으로 지탄받아 왔으며 삼성이 다시 대학별 서열을 매기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미국에도 대학 서열이 있고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순위로 삼성은 서열을 정했으니 문제가 없으며 서열 극복을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또한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대학 총장 추천제 논란에 대한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한겨레가 모든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을 실시해 적성검사 인원을 최소화하면 직무적성 검사 응시 인원을 줄이는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비해 중앙일보는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기업이나 단체의 실험을 사회가 포용하는 것도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국가 경제와 사회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이 일반적인 기업의 수준을 넘어섰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삼성의 채용시스템에 관한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이 논란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숨어 있다. 그것은 청년실업과 고용문제뿐 아니라 뿌리 깊은 대학 서열과 지역차별, 남녀차별 문제까지 다양하다.

류대성
용인흥덕고 국어교사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사회제도다. 또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이룬다.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고 그 갈등을 조정하면서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제도와 규범을 만들어 간다.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기업과 대학의 입장이 다르고 취업 준비생 입장이 또 다르다. 삼성의 대학 총장 추천제 논란을 통해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자.

류대성 용인흥덕고 국어교사

▶다음 주 논점 대학 구조조정
2월 25일자에는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