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농구] 명승부 되돌아보기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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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토너멈트 명승부 열전 - 3

■ 조지타운 (1984~85시즌)

1984년 NCAA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한 조지타운대학은 졸업반이던 패트릭 유잉을 중심으로 2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유잉과 함께 데이비드 윈게이트, 레지 윌리엄스 두 2학년생 콤비와 포인트가드 마이클 잭슨의 안정적인 게임 리딩은 우승에 대한 희망을 더욱 밝게 했다.

더욱이 명장 존 톰슨의 지휘아래 유잉을 중심으로 구성된 탄탄한 수비진은 정규시즌 경기에서 상대팀을 12번이나 50득점 이내로 묶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토너먼트의 평균 실점에서도 상대팀을 39득점으로 봉쇄하는 기록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조지타운의 2연속 우승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평가받았던 노스캐롤라이나, 인디애나등 ACC 소속 팀들이 줄줄이 탈락했고 결국 1985년 4강 전은 조지타운이 속한 컨퍼런스인 '빅 이스트''의 3개 학교(조지타운, 세인트 존스, 빌리노바)가 포함되었다.

조지타운이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크리스 멀린, 마크 잭슨, 빌 웨닝턴이 이끌던 세인트 존스.

정규시즌에서도 여러 번 맞대결을 한 두 팀의 경기는 조지타운의 승리로 돌아갔고 토너먼트에서도 조지타운의 우세가 점쳐졌다. 예상대로 경기결과는 77-59로 조지타운의 승리였고 결승상대 역시 '빅 이스트'' 라이벌인 빌리노바였다.

정규시즌에서 빌리노바는 조지타운의 준결승 상대였던 세인트 존스와 마찬가지로 두 번이나 완패했던 기록이 있었기에 조지타운의 2연패는 쉬워 보였다.

하지만 '이변'은 존재하는 법.

빌리노바는 결승전에서 조지타운의 강력한 수비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달아 득점에 성공했고 에드 핀크니가 패트릭 유잉을 상대로 훌룡한 매치 업을 보여주며 66-64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빌리노바의 승리는 83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우승과 함께 NCAA 토너먼트 역사상 가장 큰 이변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빌리노바의 승리 요인은 그들의 높은 슈팅 성공률에 있었다.

그들은 전반전에 시도한 19개의 슈팅 중 13개를 성공시켰고 경기 종료 때까지 78%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지금껏 NCAA 토너먼트 사상 가장 좋은 기록으로 남아있게 된다.

또 하나의 승리 요인은 바로 자유투 성공률.

그들은 조지타운의 강력한 수비로부터 얻어낸 자유투 14개중 11개를 성공시켰다. 조지타운의 감독 존 톰슨은 "시합 내내 그들(빌리노바)의 플레이를 보고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들이 우리와 정규시즌에 경기를 가졌던 팀이 맞는가?' 라고 어쨌든 그들은 최고의 경기를 결승전에서 보여주었다"며 당시를 회고한다.

패트릭 유잉 역시 빌리노바의 선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의 플레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들의 슛은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들어갔다. 결국 그것 때문에 우리는 패배한 것이다"

■ 일리노이 (1988~89시즌)

ESPN의 유명한 해설자이면서 대학농구에 관해 권위와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딕 바이탈은 1989년 토너먼트의 일리노이대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Highfliers'

바로 켄달 길, 닉 앤더슨, 케니 배틀. 3명의 선수를 중심으로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일리노이대학.

그들은 82~83시즌 휴스턴대학의 드렉슬러, 슬라마 자마에 이어 또 한번의 현란한 개인기와 덩크슛을 선보이며 최고의 인기 팀으로 부상했다. 세 명의 선수들의 장점은 화려한 개인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센터를 제외한 4개 포지션 어디에서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다재 다능함은 그들이 충분히 챔피언십에 도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음을 증명했고 정규시즌에서도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미시건대학을 맞아 두 차례 모두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바이칼은 "그들은 어떠한 포지션에도 폭발력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수비시에도 그들은 어디에서건 상대 팀의 득점 원을 봉쇄할 수 있다. 공격에서도 이들의 위력은 그대로 유지된다"며 4강 후보 나아가서는 우승 후보로 이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토너먼트에서 일리노이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들은 16강, 8강을 손쉽게 뚫고 4강에 오르게 되었고 준결승 상대는 라이벌인 미시건대학이었다.

미시건의 감독 스티브 피셔는 정규시즌 때와는 다른 포메이션으로 일리노이와의 경기에 나섰다. 그들은 선발 라인업의 신장을 높여 포인트가드 루말 로빈슨을 제외하고 모두 200cm이상의 장신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백업 맴버였던 206cm의 포워드 신 히긴스를 선발로 돌려 일리노이의 배틀과 앤더슨을 번갈아 수비하도록 했다.

피셔의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신장은 작지만 스피드가 뛰어났던 로빈슨이 길의 공격을 무력화 시켰고 장신 포워드였던 글렌 라이스와 신 히긴스는 일리노이의 앤더슨, 배틀의 슈팅을 차단하는데 성공한 것.

양 팀의 경기는 그야말로 접전이었다. 89년 토너먼트를 통해 가장 치열했던 경기로 기억된 이날의 승부는 경기 종료 직전 공격 리바운드에 의한 바스켓 카운트를 얻어낸 미시건의 승리로 끝이 나고 말았다.

미시건의 이날의 승리로 기새를 올리며 결승에 진출 결국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학교로 돌아갈 꿈에 젖어있던 일리노이는 결국 4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고 이후 배틀, 앤더슨, 길 모두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며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 (4)편에 계속

류한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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