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친절한「프랑스」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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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날「프랑스」는 석유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아랍」과「아프리카」정책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10여년 전「알제리」를 해방시킨「드골」에겐 역시 오늘을 내다보는 정치적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 .핵무기까지 갖춘「프랑스」는 현대문명과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성공적 결합체다.
기술이 뒤떨어진 한국에 과학계통의 장학금을 주려해도 과학도는 적고 웬 불문학도가 그리 많으냐고 어느「프랑스」인이 내게 묻는다. 그들의 문학을 한대서 감동할 그들이 아니다. 그 많은 불문학도가 우리 문화에 기여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반성해 볼 문제다「프랑스」의 지하철 안에는『상이군인과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써 붙여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입법화한 법규라고 했다. 그런 말을 써 붙이지 않아도 으례 연로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우리네 도덕률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리에서 길을 물으면 한결같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더러는 좇아와서 설명해 주기도 한다.「제네바」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르·몽드」지를 뒤적이다가「프랑솨·사강」의 신작『잃어버린 얼굴들』이 나온 것을 알았다. 나와 같은 연령의 작가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알아보고 싶고 불어공부도 할 겸, 한권 사서 읽어보았다.
그녀 나름의 재간으로 소설을 구성해 나가는 솜씨는 여전한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소설 속에 흐르고 있는 권태가 그녀의 나이만큼 늙어버렸다는 것이다.
「피가로」지에 난 평은『달라진 것이 없는 중간소설』이라고 일축하고 있었다. 감정에 속아 심각해져서는 안되며 사랑과 권태와 감정에 다같이 충실하라는 것이「사강」의「모럴」이요, 미학이기도하다.
지긋지긋한 일을 잃어버리기 위한 사교계의 치료약처럼 취급되던「알콜」과「섹스」는 전의 소설들에서보다 덜 등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좌절된 예술가·무능한 사교계의 인사들이 드나드는「살롱」묘사는 여전하다.
『슬픔이여 안녕』을 쓴「사강」이『잃어버린 얼굴들』에서『권태여 안녕』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와 진취적 포기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것이「피가로」지「로벨·캉테르」씨의 논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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