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연 개성 머물며 평양과 카드 조율 … 배수진 친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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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거여동 자택에서 만난 이산가족 강능환(93) 할아버지는 상봉 예정일(20일)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날짜를 지워가고 있었다. 강 할아버지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상봉이 무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할아버지는 “자꾸 미루다 영영 못 보게 되면 어떡하나”라며 심정을 묻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박종근 기자]

남북이 14일 고위급 접촉을 속개한다. 북한은 13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남북 고위급 접촉을 14일 속개하자고 제안해 왔다. 이를 우리 측이 수용키로 해 지난 12일에 이어 2차 접촉이 이뤄지게 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어제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니 이어서 협의하자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측에서 속개란 표현을 썼고, 2일차 회담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일 밤 대표단 간엔 인사도 없이 헤어져 사실상 결렬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으나 양측이 접촉을 이어가기로 함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원동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나선 12일 1차 접촉에서 북한은 ‘상호 비방중상과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이란 기존 요구를 되풀이해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했다. 회담 베테랑이자 남북관계 실무 책임자를 투입하고도 새로운 협상카드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1차 접촉에 의미를 부여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 대북정책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며 “북한 측이 소위 존엄 모독, 언론 보도, 키 리졸브에 대해 얼마나 크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중단’에서 ‘연기’로 요구수위를 다소 낮춘 것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 1위원장이 남북관계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서로 잘해 보자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며 “1차 접촉에서 확인한 이견을 좁히기 위한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12일 접촉에 대해 정부는 이 이상의 말은 아끼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12일 상호 입장 차이를 확인한 양측은 하루 이상의 시간을 가지며 내부 조율을 거쳤다. 그래서 2차 접촉에선 보다 진전된 입장으로 마주 앉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대표단은 평양으로 철수하는 대신 개성에 머물며 14일 접촉을 준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은 “북한 대표단이 평양으로 철수하지 않은 것은 이번 접촉에서 성과물을 내겠다는 일종의 배수진”이라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확고한 방침 속에 진행하는 접촉이고 실무총책이 회담에 투입된 만큼 결과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국내외적 관심 속에 진행되는 대화인 만큼 북한도 스스로 판을 깨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려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북한의 입장 변화와 우리 측이 대북 투자 금지를 골자로 하는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면 남북관계는 한 계단 전진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기존 입장에 얽매여 군사훈련을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연계시킬 경우 다시 혼돈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

글=정용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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