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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에서 울릴 김연아의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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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훈범
국제부장

사람들은 오랫동안 미의 판단 기준이 학습되는 거라 믿었다. 외모 따지는 눈이 갓난아기 땐 없다가 살아가면서 문화 전달을 통해 생겨난다는 거였다.

 미국 심리학자 주디스 랑글루아가 1987년 통념을 깼다. 유아들에게 잘생긴 얼굴과 못생긴 얼굴 사진을 보여줬더니 잘생긴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유아들은 또 잘생긴 얼굴 가면을 쓴 사람과 놀 때 더 즐거워하고 놀이에 더 몰입했으며 스트레스를 덜 받고 거부반응도 덜 나타내더란다(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 애나 어른이나 보는 눈은 한가지라는 얘기다.

 아름다움에 끌리는 게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는 건데, 이번 올림픽만 봐도 정말 그렇다 싶다.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미남 미녀 선수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선지 제사보다 젯밥이 더 관심인 선수들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미녀 여자 스케이트 선수 하나는 신통찮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기 무섭게 후드를 벗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퍼포먼스를 하다 그만 자빠지고 말았다. 그때 얼음이 깊게 파이는 바람에 진행을 중단하고 트랙을 보수해야만 했다. 애꿎은 다음 차례 선수만 페이스를 잃고 경기를 망쳐버렸다.

 그래서 더 돋보이는 게 우리의 김연아다. 세계 챔피언 실력과 예술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예쁜 얼굴과 우아한 몸매,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아름다움은 다른 데 있다. 떠도는 우스개가 말해준다. “김연아의 최대 강점은 멘털이고 최대 약점은 국적이다.” 피겨 불모지 한국의 주니어 선수로서 무시와 편파판정 따위의 설움을 숱하게 겪은 그녀다. 그런 악조건을 멘털로 이겨냈고 그때마다 그녀의 멘털은 더욱더 담금질됐다.

 김연아 멘털의 동의어는 의연함이다. 지난해 NBC와 인터뷰할 때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눈물 흘린 이유를 사회자가 물었다. “이제 다 마쳤다는 생각에서”라는 대답은 사회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금메달이 보였기 때문이냐”고 유도했지만 김연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모두 마쳤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김연아식 표현인 거다. “건강하게 여기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경기 시작 전 기도가 그래서 나온다. 남들처럼 “실수 없이 잘하게 해주세요”가 아닌 것이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만도 고마운 거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김연아가 며칠 후면 정말로 모든 걸 마친다. 그녀는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할 테고 의연히 하늘의 뜻을 기다릴 것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터다. 또 그 아름다운 모습에 세계인들은 기꺼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 박수에 『오디세이』에 나오는 구절을 보태고 싶다.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손과 발로 쟁취한 것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

글=이훈범 국제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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