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수난… 사찰 문화재|보존과 문제점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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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남 송광사에서의 이번 국보 도난 사건은 불교 문화재 보존상의 여러 가지 문젯점을 제기하는 한편 본격적인 불교 박물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는 예부터 고승을 많이 배출한 승보란 점에서 우리 나라 3대 사찰의 하나. 그래서 전래하는 유품도 많거니와 양산 통도사·합천해인사와 함께 독자적인 유물관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사찰로 지목된다. 송광사에는 건물 4동이 국보 및 보물로 지정돼 있고 그밖에 이번 잃었다 찾은 목조 불감을 비롯해 금동 요령과 경패 43장 및 4종의 불서 등이 지정돼 있다.
대표적 사찰에 마련된 대표적 유물관의 금고 속에서 전래의 성보가 도난 당했다는 사실은 바로 전체 불교 미술품에 대한 보존책의 헛점을 역력히 입증한다. 더구나 이 송광사에서는 65년 가을 진열품 중의 불상·호박염주·금관자 등 30여 점을 분실했다가 끝내 그 일부를 회수치 못한 사례까지 있다.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이미 10년 전에 드러난 헛점을 방관했기 때문에 재발된 것이며 현상을 그대로 지속하는 한 얼마든지 더 크게 재발될 소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난 10여년 동안 사찰 유물의 도난 사건은 빈번하게 보도됐고 은폐된 것까지를 포함한다면 굉장한 건수에 달할 것이다.
도난 당한 것 중엔 돈을 만들기 손쉬운 값진 전래 불구가 있는가 하면 선인들의 서화가 있다. 최근에는 불상과 정화의 도난 사례가 부쩍 늘어 2,3년내 시중에 나돈 불화만도 수천 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도난에는 당해 사찰의 주지가 사보를 사물처럼 만들거나 처분한 예가 있는가 하면 승려가 들고 나와 판 예도 있다. 혹은 그 밖의 연관 있는 사람들의 소행일 때도 있었다. 해남 대흥사의 서산대사 필첩 사건, 서울 봉은사의 은입사 향로 사건, 양주 흥국사의 불화 사건 등이 사찰 안에서 빚어진 산일이었다.
이점 가야 사적 연구 회장 김창호씨는『가사 입은 문화재 도둑 중』이라 지탄하면서 종교인의 양식을 한탄했다. 그는 그 헛점으로서 ⓛ사찰의 일체 재산 목록의 미비 ②주지의 빈번한 경질 ③승려의 사찰 유물 사유화 등을 들어 불교계 자체의 내부적 각성과 더불어 보전상의 완비를 제의했다.
물론 도둑이 모두 내부적인 것만은 아니며 숫적으로 더 많은 경우가 외부로부터의 침입이다. 또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군소 사찰들에서는 외부 사람들의 속임수나 유혹에 넘어간 예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건물의 보수나 유물의 개수를 구실 삼아 기존하는 동산 문화재를 새것과 바꾸는걸 예사롭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조계종 총무원은 이번 송광사 사건을 계기로 성명서를 발표, ①말사에 있는 불교 문화재를 본사로 모아 완벽한 유물관 시성을 할 것 ②성보(불교) 문화재 감독인(승려)에게 사법권을 부여할 것 ③승려에게 문화재 특별 교육을 실시할 것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총무원의 성명은 막상 이번 사건에 대응하려는 즉흥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방안은 못된다.
본사에다 유물관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박물관 설치 기준이 엉망인 현 실정으로는 아무런 실효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성보 보존 위원회가 구성돼 있으나 전혀 유명무실한 기구이고, 유물 보존에 대한 엄격한 규제도 마련된 바 없다. 각 사찰에 그런걸 신중히 다룰 인재를 갖춰 놓는다는 것도 막막한 공론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새로운 안이 불교 박물관 설치이며 적어도 불교 종단이 운영하는 동국대와 조계종단 사이에는 금년 들어 다소의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불교 대학인 동대에 박물관을 확장, 불교 박물관의 역할을 하게 하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각 사찰에서 보존키 어려운 성보나 낡아서 개체 되어야 할 물건 등을 맡아서 보관하고 혹은 자료로서 보존케 하려는 구상이다.
이 동대 박물관 확대안은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한 방법이다. 다만 사찰 유물에는 신앙·예배 대상도 적지 않고 또 당해 사찰에 굳이 보존하겠다는 주장도 없지 않을 것이므로 단시일 안에 성과 있는 주장을 하는데는 다소 난점이 있다.
그러므로 우선 시급한 조처는 불교계 자체가 사재 관리인의 철저한 교육 및 양성이며 그 다음이 사찰 안 유물관 설치 기준의 강화이다.
따라서 종교에서는 대규모의 불교 박물관을 마련해 기존하는 전래 유물을 되도록 한데 모아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사찰 보수 때마다 버리고 마는 연목이나 불단 혹은 건물의 일부라도 옮겨 보존할 수 있는 장소를 근교의 어느 사찰 중심으로 설립하는 장기적 구상도 해봄직한 일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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