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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너무 나쁜 용어 치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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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재작년 12월 개봉된 프랑스 영화 ‘아무르’는 치매에 걸린 음악가 부부의 은은한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아내 안느는 “늙어서 이미지 망치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남편 조르주에게 말한다. 그 암시가 운명처럼 안느에게 닥친다. 갑자기 오른쪽 마비가 오면서 치매가 시작된다. 조르주는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안느는 점점 황폐해진다. 더 이상 안 된다고 판단한 조르주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는 치매 어머니가 서울역에서 실종되면서 시작한다. 자녀들이 엄마를 찾지 못하면 병세가 악화돼 안느처럼 더 망가질 것이다. 두 작품 속 환자의 아픔과 가족애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무르의 비극은 ‘간병 살인’이다.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이특 아버지 사건처럼 국내에도 흔하다. 조르주는 “병원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안느의 당부에 따라 집에서 돌본다. 치매 간병은 전문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 환자가 어떻게 악화돼 가는지를 미리 알고서는 상황별 대처 방법을 익혀야 한다. 조르주는 물 먹기를 거부하는 안느의 뺨을 때리고서는 용서를 구한다.

 치매의 치(癡), 매(<5446>) 둘 다 어리석다는 뜻이다. 흔히들 노망(老妄)이라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으면 “치매 걸렸다”고 한다. 모두 나쁜 의미의 사회적 낙인(Stigma)이다. 그래서 숨긴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 현장전문가는 “의사·교수처럼 명망 있는 집안일수록 노출을 더 꺼린다”고 말한다.

 여느 질병처럼 치매도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초기에 약물 치료 등 전문가 도움을 받으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갑상샘 장애 등의 질병이 원인이라면 완치도 가능하다. 주간보호나 단기보호시설로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래 부르고 게임을 즐기면 증세가 한결 좋아진다. 가족도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된다. 숨기면 숨길수록 나쁜 쪽으로 가속 페달을 밟는 것과 같다.

 이참에 용어를 바꾸는 게 어떨까. 18대 국회에 그런 법안이 검토되다 유야무야됐다. 치매는 일본 용어를 갖다 쓴 것이다. 그런 일본조차 10년 전 인지증으로 바꿨다. 우리와 같은 한자권인 대만은 실지증(失智症)으로, 홍콩은 뇌퇴화증으로 바꿨다. 우리도 나병을 한센병으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바꾼 전례가 있다.

 치매는 노인의 10%가 앓는 흔한 병이다. 나이 들면 관절이 닳듯이 뇌가 닳아 생긴다. 낙인을 줄이지 않으면 또 다른 조르주가 계속 나올 것이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