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미 연방대법원이 ‘정의’인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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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31면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3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명한 말을 인용했다.

“해밀턴은 사법부를 ‘가장 덜 위험한 기관’이라고 했습니다. 행정부는 칼을 쥐고 있고, 입법부는 국민의 지갑을 강제로 여는 기관이지만 사법부는 단지 법적 분쟁에 대해 판단할 권한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국민의 믿음과 이해입니다.”

이 말은 1788년 발간된 연방주의자(The Federalist) 논집의 78번째 논문에 실려 있다. 이 논집은 미합중국의 구성원리와 헌법해석의 원칙을 담았다. 해밀턴은 왜 사법부를 ‘가장 덜 위험한 기관’이라고 했을까.

그가 우려했던 것은 과도한 입법부의 권력이었다. 당시 영국은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의회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 체제를 도입한다면 국민의 헌법적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양 대법원장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해밀턴은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법권력이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 분리되지 않았을 때 어떤 자유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몽테스키외의 의견에 동의한다. 사법부만으로는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다른 권력과 결합됐을 때에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있다.”

해밀턴은 사법부가 위험하지 않은 기관이라고 말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다른 권력과 손잡았을 때 가장 위험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양 대법원장이 해밀턴의 의도를 몰랐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사법부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양 대법원장 스스로도 말했듯 사법부의 판단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국민의 믿음과 이해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부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고위 법관’으로 대표되는 대법관 구성의 획일화 때문이다. 실제로 양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들은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소수의견을 내는 데 인색했다. <본지 2월 2일자 8면>

권위주의 정권 시절 우리나라 사법부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우리 사법부는 유독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 집착하는 듯하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사법부의 독립은 단지 국가권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정 여론이나 계층, 집단에 치우치지 않고 사회의 변화와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이다. 사법부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내부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법원이 외적 구성의 다양성은 물론 내면의 다양성 또한 갖춰야 함은 당연하다.

자주 인용되는 말 하나. 미국의 연방대법관을 ‘저스티스(Justice·정의)’라고 부른다는 것. 정의란 무엇인가. 대법관이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 대법원이 국민에게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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