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때부터 청자구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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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청자가 구워지기 시작한 시기는 10세기께 고려 초의 중국 남방계 영향이 아니라 그보다 수세기 앞선 통일신라시대부터 생성된 것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되어 고고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려청자로 알려진 청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체로 고려 성종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는 통설을 뒤엎고 확실하게는 통일신라 말의 9세기, 크게는 7∼8세기께까지 청자사를 소급시키는 새로운 학설이 최순우씨(국립박물관장)가 최근 집필중인 「고려청자 연구」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최 관장은 이 논문에서 한국의 청자는 중국 양자강 하구의 항주만 근처의 여요요에서 전파된 기술이 10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한국의 서남단 해안에 이식되었다는 통설을 뒤엎고 그보다 수세기 앞서 중국 북방계통의 청자기술이 들어왔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따라서 7∼8세기께 이입된 중국 북방계통의 청자기술은 그보다 후대에 이입된 남방계통의 우수한 청자기술에 밀려 도태된 것이다.
특히 최 관장은 경주 155호 고분의 봉토에서 출토된 청자의 파편 신라토기와 함께 발견됐다는 사실을 지적, 비록 후대에 와서 봉토를 쌓았거나 98호 고분 위에 다시 무덤을 썼다고 해도 토기와 청자의 파편이 동시에 출토된 것은 청자사를 소급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한국의 청자사를 소급시킬 수 있는 요지는 인천 경서동 요지와 충남 서산요지, 그리고 최근 경주박물관에 의해 발견된 경주 청자요지가 있다. 이들 요지에서 출토된 청자는 똑같이 청자색깔이 혼탁된 암연색 계통이며 양식은 당말 오대의 규격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남방식계통의 환원염이 아닌 북방식 계통의 산화염으로 구워졌다.
이들 요지에서 확인된 가마의 양식 역시 남방계통의 가마와는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고려청자가마의 구조는 긴 가마에 칸막이릍 넣었으나 인천·서산·경주의 가마는 긴 통가마다. 또한 가마속에 넣는 그릇받침은 고려청자가 수편이지만 신라 말 청자가마는 앞이 높고 뒤가 낮아 말굽처럼 생겼고 이를 경사면에 놓아 수평을 유지하는 등 고려의 일반가마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최 관장은 이와 같은 청자의 양식가마의 구조 등으로 미뤄 중국 남방계의 청자기술이 전남 강진·무안에 들어오기 이전 중국 북방계의 청자기술이 이미 한반도에 이입되었다고 주장했다.
10세기 후반에 한국청자가 생성된 것으로 학설이 굳혀진 것은 주로 서해안 일대의 청자요지에 의해 확인되어 일인들의 학설로 주장되었고 현재까지도 청자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와 같은 그릇된 일제의 청자사는 최근 「미까미·쓰기오」씨(동경대 교수)같은 저명한 학자도 최 관장에게 그릇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한국의 청자기술은 7∼8세기께 초보적이고 미숙한 중국의 북방계통 청자기술이 먼저 들어왔으나 중국의 여요요에서 이입된 것 같은 우수한 기술에 밀려 도태된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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