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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은 세계적 담론과 사조를 생산하지 못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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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이만열)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국제대회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이는 한국 여성 프로골퍼들, 국제 정치무대에서 눈부시게 활동하는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 그리고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 등으로 인해 한국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약진(躍進)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처럼 한국에 오래 거주해 온 사람으로선 이렇게 좋은 교육과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 중에 아직도 여기저기 빈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중국학을 연구하는 나로선 한국, 특히 서울에 살며 혜택이 많다. 거의 모든 분야(역사·문학·경제·인류학 등)의 전문가들을 서울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서울에서 중국·일본 또는 한국의 시문학(詩文學) 세미나를 열고자 한다면 각 분야에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전문가 30~40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한데 모을 수도 있다. 도쿄·베이징·상하이 또는 보스턴에서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꺼번에 모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학 연구에 있어서 리더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중국학 연구와 뚜렷이 구별되는 한국식 이론이다. 한국의 학자들은 중국학에 대한 많은 전문 지식을 갖췄음에도 중국학 분야를 연구하는 세계의 다른 학자들에게 본보기나 영감이 될 수 있는 일련의 한국식 원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학의 경우 세계 각국은 독자적 학풍이 있다. 일본에서는 서지학(書誌學) 위주의 치밀한 해석 전통이 있고, 프랑스의 경우는 19세기 에두아르 샤반(<00C9>douard Chavannes)에서 시작된 현지 조사와 텍스트 분석을 결합한 복합적 연구 방법론이 뚜렷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럽식 중국학의 강점과 새로운 미국식 실용주의를 결합한 하버드대의 존 페어뱅크(John Fairbanks)류의 학문적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중국학 연구자들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유학생들이 몰릴 만큼 매력적인 독자적 접근법을 구축하고 있는가.

 이것은 비단 중국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서울은 이제 예술가·화랑·예술비평가들이 활발하게 창의적 활동을 하고 있는 역동적 예술의 중심지다. 그런 에너지와 재능을 갖춘 서울에 세계의 예술가와 비평가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사조(思潮), 즉 ‘Seoul School(서울파)’이 없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서울에는 파리·베를린·바르셀로나·도쿄와 같은 국제 도시들처럼 예술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예술인들의 모임도 보기 힘들고, 예술계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으로 결속시키는 비평가들의 학파나 담론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워낙 급속도로 부상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새로 형성된 국가의 위상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적 접근법 내지 한국적 방법론을 찾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더 뿌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해 내는 경제 대국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수준의 이론적·개념적 담론 형성에 확신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분단국가라는 사실도 놓여 있다.

한국인들의 대화나 일상생활에서는 북한의 존재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평행선을 그으며 한국 문화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한국이 주는 압박은 대단하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엄청난 누수 현상을 초래하고 있으며, 결국 한국 스스로 자신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분단을 지리적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통일된 한국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기로 두들겨보는 통일 비용만으로는 평가할 수가 없다. 한반도의 지리적 분단은 전반적인 한국 문화를 관통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하고 있으면서도 분단·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한국도 경제적인 측면의 통일 비용만 계산하기보다 돈으로 도저히 환산해 낼 수 없는 문화적·정서적 문제에 대한 고려도 해야 될 시기가 되었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