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호·과보호 속의 어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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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월5일은 52번째 어린이날. 다채로운 행사로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꽃봉오리 같은 동안에 함박꽃 웃음이 피고, 뭇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이들을 보는 것은 기쁘고 대견한 일이다.
서울시가 어린이 대공원에서 베푸는 기념예술제를 비롯하여 전국 고궁·유원지 등의 무료공개 등 올해의 어린이날 행사는 여느 해없이 푸짐하다.
더구나, 서울을 비롯한 몇몇 시에서는 올해에는 특히 고아원 등 각종 수용시설에 들어있는 불우한 청소년의 보호활동에 눈을 돌려 이 불우한 어린이들에 대한 항구적인 생활지도방안을 세우고, 서울시에만도 23만6천 여명이나 되는 영세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건전한 오락활동과 직업기술지도 등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도 진일보라 할 수 있다. 「새싹회」가 호소하고 있듯이 이날 하루만이라도 3천만이 모두 동요를 불러 어린이들을 축복해주자는 분위기만은 확실히 무르 익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오늘 하루 성인사회가 베푸는 이같은 행사가 제아무리 푸짐하다 해도 그것으로써 52년전 어린이날을 제창했던 큰 뜻이 이 땅에 완전히 이루어지기는 너무도 가혹한 우리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어린이들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학대가 심한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영일없는 과보호의 채찍질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이 그들 나름대로 독립된 인격자로서 존중되고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일상화하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 어린이들에 대한 심한 매질, 연소 근로자의 혹사가 예사처럼 행해지는 가운데 버림받은 불량소년들의 범죄는 날로 조직화·난폭화·대형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 불우한 처지에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국 4백여개의 수용시설들 중 국공립은 단 3개소 뿐이요, 그나마 그 대부분이 심한 경영난으로 폐문 직전의 위기에 놓여있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베푸는 어린이날 행사에서 가장 큰 국가적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바로 이들 불우청소년들의 복지와 선도문제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특히, 도시어린이들 앞에 노출되고 있는 「제3의 공간」, 즉 자칫 사고와 범죄로 직결되기 쉬운 위험한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데 머리를 돌려야 하겠다.
우리의 도시 어린이들에게는 특히 놀이터가 모자란다. 공원이라 하여 인구 1인당 고작 3.5평방m밖에 안되고, 도로율에 있어서도 세계주요 도시중 최하위를 맴도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있어 놀이터가 없는 어린이들은 윤화나 사회악의 오염으로부터 거의 무방비상태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거리마다 비집고 들어선 각종 유흥시설과 학교 주변까지를 빽빽이 메운 반도덕적·반정서적인 생활환경 등을 그대로 두고서 어린이날의 찬가를 부른다는 것은 어른들의 위선을 돋보이게 할 뿐일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읊은 시인이 있지 않았는가. 지금 이같이 어지러운 환경, 부조리에 싸인 사회풍조, 놀이터조차 변변치 않은 환경 속에서, 그나마 전적인 무보호(방치)와 지나친 과보호 등 양극 현상 속에 자란 우리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절로 암담하다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성인들과 지도층 인사들의 새삼스런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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