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카드사태로 신용 사회 근간 흔들려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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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3개 신용카드사에서 시작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신용 공황’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연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인터넷상엔 여전히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인터넷에는 지금도 고객 정보를 불법 거래하는 브로커를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 브로커는 카드번호·유효기간은 물론 시중은행 보안카드 일련번호와 인증번호까지 포함된 ‘개인정보 종합선물세트’를 건당 10만원에 팔겠다고 제의했다고 한다. 지금은 분위기가 안 좋으니 “설 명절이 지나면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해주겠다”고도 했다. 아무리 이번 3개 카드사에서 유출된 것과 다른 경로를 통해 유출된 정보라고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사이버 범죄도 여전히 기승이다. 경찰청은 지난 주말 인터넷뱅킹 이체 정보를 바꿔치기해 81명으로부터 9000만원을 가로챈 해킹 조직을 적발해 구속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을 통해 65명으로부터 4억여원을 가로챈 일당도 붙잡아 조사 중이다. 정부 대책을 비웃듯 고객 정보를 이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누군들 안심하고 사이버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 은행 창구에서 대면(對面) 거래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사회의 정보 보호·보안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대증(對症)요법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 당장 징벌적 과징금, 영업정지, 형사처벌 등 제재 수위를 크게 높이더니 대출 영업의 전화 거래를 금지하고, 피자·치킨 주문에도 이체번호(PIN)를 넣도록 하는 등의 과잉 대책까지 쏟아내고 있다. 개인정보의 수집·보유·활용을 무조건 제한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온통 규제와 처벌 일색인 이런 대책들은 당장은 시원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근본 처방은 될 수 없다. 되레 신용사회를 후퇴시키고 미래의 국가 먹거리인 정보통신기술(ICT)산업 발전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불법 정보 수집과 유통, 거래는 철저히 발본색원해야 한다. 신용카드사는 이번 사태에 원죄가 있다. 아무에게나 길거리에서 카드를 발급해주고 카드론을 통해 수익을 쉽게 챙긴 것도 모자라 고객 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온 책임이 크다. 철저한 보안 시스템 구축으로 고객 신뢰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방치하고 키운 금융당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정당한 수집경로를 통해 획득한 자료를 가공하고 활용하는 기술, 인프라 확충, 서비스 확대까지 위축돼서는 안 된다. 정보 보안과 활용은 양면의 거울이다. 이 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마녀사냥식 정보 통제만 판치면 어렵사리 키워온 국내 ICT 경쟁력은 그대로 무너질 수 있다. 당장 포털·홈쇼핑 등 관련 비즈니스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빅데이터·인터넷산업 등도 얼어붙을 것이 뻔하다.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