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커피, 칸트의 시계추 산책 … 위대한 창조의 시작은 사소한 ‘의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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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호 26면

저자: 메이슨 커리 저자: 강주헌 출판사: 책읽는 수요일 가격: 1만5000원

지난해 조정래 작가를 인터뷰하면서 선생의 몇 가지 집필 원칙을 들을 수 있었다. 대하소설『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쓰던 시절부터 하루 13~14시간씩 원고지와 씨름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지금도 선생은 원고지에 페이지 수를 일일이 기록하며 하루 5000자를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간다고 했다. 또 펜을 대기 전 최소 세 번씩 문장을 생각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라면, 최근엔 체력을 생각해 2시간에 한 번씩 국민체조를 하는 원칙이 더해졌다고 했다.

『리추얼』

이를 대가다운 성실함 혹은 작가정신이라고만 봐야 할까. 흥미롭게도 색다른 관점이 있다. 예술가나 문인처럼 창조적 사고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자들에겐 스스로 정한 일상의 원칙들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은 꼭 절제만도 아니어서 세상의 방해로부터 온전한 작업을 할수만 있다면 흡연과 음주, 게으름, 심지어 투잡 생활까지도 허용된다. 이른바 창작을 위해 혼자 치르는 숭고한 ‘리추얼(ritual)’이라는 얘기다.

‘아침형 인간’으로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저자는 어느 날 다른 작가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할까 궁금해하다 지난 400년간의 위대한 창조자들을 일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수면·작업·식사·연습 등을 적절히 조합해 가며 ‘생산적 내일을 위한 하루의 의식’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누구나 갖는 습관을 두고 유난을 떤다 싶지만 적어도 161명의 거장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일단 ‘모범생파’. 미국의 정치가 밴저민 프랭클린은 절제·청결·중용 등과 같은 덕목을 13개로 정하고 이를 한 주에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이마누엘 칸트는 모든 것을 정확한 시간에 기계처럼 행했기에 그가 잿빛 코트에 지팡이를 쥐고 집 밖으로 나오면 이웃들이 그때를 3시30분이라 알아챌 정도였다. 헤밍웨이는 전날 아무리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오전 6시가 되면 멀쩡한 모습으로 깨어났다. 이와 정반대로 애거서 크리스티는 주변 지인들이 그가 언제 소설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궁금해할 정도로 어느 순간 불쑥 30분쯤 사라져 집필을 하곤 했고, 영국 극작가 톰 스토파드는 늘 마감시간이 닥쳐서야 혼비백산해 타이프라이터 앞에 붙어 있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중독과 취향을 ‘의식’으로 앞세운 자도 많았다. 베토벤의 아침 식사는 커피빈이 정확히 한 컵에 60개가 들어간 커피였고, 목욕을 할 땐 벌거벗은 몸에 물을 묻힌 채 온 방을 돌아다니며 몇 음계를 오르내리며 고함을 질렀다. 추리소설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글을 쓰기 전엔 꼭 독한 술을 한 잔씩 마셨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담배는 우리 삶에서 가장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라며 흡연을 줄이라는 주변의 조언을 뿌리쳤다. 창작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격렬한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종일 침대에 머물고, 밭에서 호박과 감자를 키우는 이들도 있었다.

위대한 창조적 작업까진 아니지만 우리 역시 매일 뭔가를 이뤄 내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작은 습관들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커피믹스 하나를 털어 낸 뒤에야, 또 누군가는 담배 한 까치를 피우고 나서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나. 가장 사소한 행동이 가장 엄숙한 이유, 책은 이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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