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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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실주의 3·꿈 2·「유머」2·감수성 1』.
중국의 유명한 평론가 임어당은 영국인의 인생관을 이렇게 평가한 일이 있다. 「프랑스」인을 제외한「유럽」인들은 대개 이 수식(?)과 별로 차이가 없다.「프랑스」인만은 현실주의에 조금 불감한 편인 것 같다. 낭만파라고나 할까.
요즘 영국인들이 당하고 있는 곤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밤이 깊으면 전기 불이 깜박이고, 모든 주택들의 실내온도는 18도C를 지탱하기가 힘든다. 주 3일만의 노동은 실질적으로 모든 사람의 수입을 깎아 내리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4분의3이 일자리를 잃었다.『암흑시대』,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2차 대전 이후 최초이며 또 최악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 원인은 철도·전기노조 등의 파업에 있다. 광부가 탄광을 떠난지도 벌써 넉 달이 가까워 온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석유파동과 겹쳤다. 아니, 석유파동을 업은 2중의 파동이다.
광부들의 주장은 임금인상. 물론 그 명분은 생계비 폭등에 있다. 이들은『임금이 아니고 삶을 달라』고 외친다. 그들의 임금은 주당 64「달러」(2만5천6백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광부들의 구호를 보면 감정적인 요소도 상당히 강한 인상이다.『「히드」(수상) 여!「아랍」인이 석유 값을 올려 달라면 굽신굽신하며 올려 주고, 우리말은 꿩 꿔먹은 자리냐!』- 이런 투이다.
근 착「뉴스위크」지를 보면 한 광부는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무려 43년 동안이나 무릎을 꿇고 지냈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
탄광노동자들은 드디어 총파업을 걸고, 최근 투표를 실시했었다. 파업찬성이 85%. 이것은 다수결의 표준선인 55%를 훨씬 넘는 선이다.
한편 영국 철강공업의 비명은 더욱 심각하다. 철강은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간산업이기도 하다. 국영철강회사는 최근 생산량 60%를「커트」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8주만 계속되면 철강생산은 「제로」로 떨어지고 만다는 보고도 있다.
영국은「에너지」의 70%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또 석탄은 철강생산의 85%를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이들 철강공장의 용광로가 식어 버리면 그 복구비만 해도 수백만「파운드」가 지불되어야 한다. 그것은 연간 용광로의 건설비보다 훨씬 상회하는 액수이다. 영국의「가디언」지는『이것은 영국의 파멸의 길』이라고 우려했다.
영국정부가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6.5%의 인상을 제의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30%, 혹은 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영국은 파산할 것인가?
임어당의 수식에『꿈 2·유머」2·현실주의 3』은 바로 영국의 가능성인 것도 같다. 국민들은『좁은 목욕탕에서 부부가 함께 목욕을 하자』는 등…「유머러스」한 검약현상광고를 내걸고 있을 정도이다. 그들은 자기 사회의 양식과 도덕의 수준을 믿고 쓴 것이다. 이런 나라일수록 위기엔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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