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명문장 <3> 김동규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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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는 김동규 교수. 우리 신체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뇌 관련 질환 연구에 40여 년을 바쳐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수술은 일종의 풍류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시를 쓰는 것과 같이 외과 의사는 사람의 몸을 뜯어고치고 창조하며 (중략) 만반의 수술준비가 된 다음, 메스를 들고 첫번 피부절개를 하려고 할 때의 엄숙한 순간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콘닥터가 지휘봉을 들고 연주를 시작하려 할 때나, 화가가 캔버스를 펴 놓고 첫번 붓을 대려 할 때의 삼매경과 흡사하다. - 『덤으로 산다』중 ‘수술과 풍류’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길이지만 신경외과 의사의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사람의 뇌를 만질 수 있는 면허(?)를 받은 신경외과 전문의로 매일 뇌수술을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뇌를 수술할 때의 심적 부담을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렵다.

 적지 않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조 역할을 해주지만 장시간 수술 중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모든 작업과 결정이 전적으로 수술자의 마음과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출혈이나 뇌부종이 발생할 때는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래도 신경외과 의사를 계속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퇴원하는 환자를 보는 즐거움 때문이다. 간혹 불행한 결과 앞에 심한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앞의 글은 외과의사 대선배 백수(白首) 김성진(金晟鎭·1905~91) 선생이 1965년 발표한 것이다. 백수는 의료계 원로이면서 해방 후 사회활동가로, 또 정치가로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은사의 회고록에 실린 글을 통해서다.

 김성진 박사는 문자 그대로 다재다능한 의학인이요, 보기 드문 수재이다. 외과의사나 의학교육자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문학인으로서, 때로는 정치인으로서, 때로는 풍류객으로서. (중략) 『덤으로 산다』 『쑥꽃 사어록』 『천자춘추』 『대학교수 수필집』 『개구쟁이 시절』 등 (중략) 선생님의 수필을 접하면 누구나 정밀하고도 여유 있는 관찰력과 과학적이고도 운치 있는 판단력에 감탄하게 된다. -『권이혁 회고록, 또 하나의 언덕』(1993) 중 ‘김성진 선생’

 딱딱하고 냉정한 외과의사도 멋진 수필을 쓴 분이 있구나 하는 생각과 얼마나 좋은 수필이길래 이런 찬사를 받을까 하는 호기심에 빨리 수필집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오래전에 발간된 책들이 절판되고 없는지라 수소문 끝에 일부 작품을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었다.

 회갑기념으로 발간했다는 대표적 수필집 『덤으로 산다』를 손에 잡으며 처음부터 약간의 흥분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대학 동기 동창인 현민(玄民) 유진오(兪鎭午·1906~87)의 서문 때문이다.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전부터 전해 오거니와 백수의 글처럼 백수의 사람됨을 아무런 가식 없이 그대로 드러내놓은 예도 드물 것이다. (중략) 냄새도 체도 없이 그의 사람됨이 그대로 흘러나온 글이고 보니, 백수를 미워하고 그에게 원한을 품고 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의 글도 그저 구수하기만 하다. 감상도 구수하고 유머도 구수하고 실패담도 구수하고 사회상에 대한 비판도 구수하다. 구수하고 보니 그의 글은 건강하고 건설적이고 낙천적이다. -『덤으로 산다』에 부친 유진오의 서문

 한숨에 책을 읽고 나니 새삼 은사님의 회고나 유진오의 서문이 허구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학생 때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던 수필집 등 지금까지 읽은 수필과 달리 미사여구나 난해한 단어를 구사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적절하게 표현한, 물 흐르는 듯한 문장은 필자의 냄새를 있는 그대로 풍기고 있는 듯했다. 다재다능한 분답게 책에는 여러 분야에 걸친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중 일부가 의사로서의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뇌수술을 앞둔 환자의 심정은 어떨까. 당연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앞서겠지만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한 사태에 대한 걱정의 심란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사도 뇌수술을 앞둔 전날에는 긴장감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머릿속으로 수술과정을 그려 보기도 하고 돌발 상황이 벌어져 당황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뇌수술은 두려움의 대상이요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성공 후의 즐거움보다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었다. 그때 백수의 글이 큰 힘이 됐다. 그의 문장은 다음 같이 이어진다.

 수술이 성공된 다음 피부 봉합을 마치고 실을 자를 때의 유열감은 예술작품을 완성할 때나, 연주를 마치고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받을 때의 만족감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배는 이처럼 일찍이 나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었다. 풍류라는 놀고 즐기는 뜻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분이라고 왜 수술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겠느냐마는 그 부담감을 낙천적 마음으로 극복했던 것 같다. 수술에 대한 자신감과 실력이 전제됐겠지만 삼매경 속에서 수술을 시작해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만족감으로 수술을 끝내셨던 것이다.

 ‘수술은 풍류다’.

 이 멋진 말을 가슴에 새기게 된 이후로 수술 전날 회진 때 환자를 대하는 나의 얼굴이 훨씬 밝아진 것 같았다. 다음날 수술장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 또한 한결 가벼워졌다. 긴장의 연속인 수술 중에도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게 됐다. 주위 동료나 간호사로부터 날카롭고 매섭고 차가운 사람이 요즈음 꽤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듣곤 한다. 세월이 흘러 기운이 빠져가는 이유도 있겠으나 대선배님의 교훈을 새겨 낙천적으로 되어 가려는 노력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환자분들도 자신이 의사와 함께 멋진 예술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내가 수술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듯이 환자들 자신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선율이나 캔버스에 그려지는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수술의 공포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한 조각 여유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김동규=1954년생.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을 지냈고,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있다. 세부전공은 뇌종양수술과 방사선수술. 대한신경외과학회 학술상, 제53회 대한민국학술원상, 명주완 의학상 등을 받았다. 수필집으로 『브레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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