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화음 속에서 웃고 또 웃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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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소년 합창단의 첫 동양인이자 여성 지휘자로 ‘모차르트 반’을 이끌고 있는 김보미씨는 소년들에게 말 잘 통하는 누나로 다가간다. 한국인 단원인 정하준 군과도 오누이처럼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웃고 또 웃었다. 뽐낼 만한 자리에 올랐는데도 그 얘기엔 손사래를 치고는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천진한 미소로 답했다. 2012년 9월, 빈 소년 합창단 520여 년 역사에서 최초의 동양인이자 여성 지휘자로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김보미(37)씨는 ‘첫’ 기록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함께 나누는 음악을 하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죠. 10~13세 소년들과 하루 두어 시간씩 노래를 하고 있으면 온 몸에 기쁨이 새록새록 고이죠.”

 18~1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4 빈 소년 합창단 신년음악회를 위해 한국에 온 김씨는 25일까지 지역순회로 이어지는 내한 공연에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김씨는 연세대 합창 지휘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합창 지휘와 성악, 그레고리안 음악학을 전공했다.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시절부터 매 주일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해 교회음악과 성가대 활동이 자연스레 그의 몸에 들어앉았다. 이런 김씨의 장점을 눈 여겨 보았던 빈 국립음대의 지도교수가 그에게 빈 소년 합창단에 지휘자 자리가 났다고 알려주었다.

 “여름 캠프에서 4주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제 적성과 능력을 테스트 받았어요. 합창단의 예술감독 겸 대표인 게랄트 비어트가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 저를 적임자로 보았던 모양입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남자 애들을 지도하려면 체력도 좋아야 해요. 개성 강한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해 그들의 주장을 들어주어야하니 사실 좀 고된 일이죠. 그런 과정을 음악에 녹여 즐길 줄 알기에 제가 뽑힌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빈 소년 합창단은 오스트리아 출신 음악가 네 명의 이름을 따 모차르트·슈베르트·하이든·브루크너 4개 반으로 나뉜다. 김씨는 모차르트 반을 맡아 23명 단원과 친구처럼 노래 연습하고 뛰어 논다. 공연을 위해 함께 서울에 온 정하준(12)군에게 김 선생님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일일이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누나처럼 살갑다”고 했다.

 김씨는 지휘자로서 자신의 장점으로 “피아노 반주자와의 호흡, 노래를 만들어내는 힘, 무대에서 단원들을 이끌어가는 능력”을 들었다. “이번 한국 무대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드리려 하는데 일단 비밀”이라고 눈을 찡긋 했다.

 “사람 목소리가 좋아요. 아이들과 노래하고 있으면 여기가 천국인가 싶습니다.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웃고 또 웃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우리 합창단의 노래 속에 흐릅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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