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안부 소녀상' 철거야 안 되겠지, 그쟈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올해 여든아홉이 된 김복동 할머니에게 소녀상은 곧 ‘손녀’다. 김 할머니는 “소녀상이 세워지는 곳 어디든지 또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마음이 착잡했지. 소녀상을 혼자 떼어놓고 올라니깐…. 아주 마음이 안 좋더라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할머니가 입을 뗐다. 지난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에 해외 최초로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 얘기다. 당시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으로 건너가 제막식을 지켜봤다. 그런데 지난달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이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현재 여기에 서명한 인원이 12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 22주년을 맞는 8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 할머니를 만났다.

 - 소녀상 철거 청원 얘기는 들으셨죠.

 “요새 동상 때문에 말이 많으니깐 마음이 더 편치 않더라고. 우리는 평화를 원해서 기념비(소녀상)을 세웠는데 잘했네 못했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거 가지고 말썽나면 안 되지. 철거야 안 되겠지, 그쟈?”

 - 우리도 ‘소녀상을 보호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갔어요.

 “그쪽보다야 적잖아.(이 청원에는 현재 3만여 명이 서명했다.) 우리 정부가 ‘이것 가지고는 말썽 피울 필요 없다’라고 한마디 해주면 좋을 텐데. 우리가 열 마디 하는 것보다 정부에서 한마디 해주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고.”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 1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정부에 자진신고하면서부터 전면에 나섰다.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프랑스, 유엔 등을 숱하게 돌아다녔다.

 - 22년 세월이 흘렀는데 바뀐 게 있나요.

 “2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답변이 없어. 일본 정부는 뉘우침이 없고 우리 정부에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안 세우니깐 답답해.”

 - 지난해 국회 국감장에 서 증언도 하셨는데요.

 “그때 정부 욕을 하니깐 듣기 싫어서 나가는 사람도 있더라고. 자기 아버지가 매듭을 못 지은 것을 따님이 대통령이 됐으니깐 같은 여성으로서 깨끗이 해결을 해주면 좋겠어. 아직까지 한마디가 없거든.”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7명의 할머니 중 181명이 눈을 감았다. 김 할머니는 “먼저 떠난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해결을 못보고 떠나간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이날도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앞을 지켰다. 글렌데일에 있는 것과 똑같은 소녀상을 꼬옥 안을 뿐이었다.

 이날 수요시위 현장에는 할머니들을 지지하기 위해 부모 손을 잡은 어린이부터 외국인 학생들까지 25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할머니 힘내세요. 저희가 항상 응원할게요’라고 적힌 손펼침막을 들고 나온 이은조(10·시흥초3)양은 “할머니들이 오래 사셔서 일본이 사과했다는 말을 들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이양은 오후에 학교로 돌아가 친구들과 이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눌 예정이다.

글=위문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