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유아용품, 동남아엔 화장품을 팔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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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면도기 업체 도루코는 지난해 이란에서 1500만 달러 수출 기록을 세웠다. 글로벌 면도기 브랜드인 ‘질레트’와 ‘쉬크’를 제치고 국내 업체가 이란 시장을 싹쓸이한 셈이었다. 이란 핵문제로 2010년 서방 국가들의 금융제재가 이어지고, 앞다퉈 시장 철수를 선언할 때 이 기업은 TV 광고를 하고 입간판을 세웠다. 그렇게 영업에 뛰어든 지 4년. 도루코는 이란에서 블루오션을 찾았다. 한선희(56) KOTRA 중동지역 본부장은 “이젠 우리 기업들도 도루코처럼 익숙하지 않는 신시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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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서울 염곡동 KOTRA 회의실.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9명의 해외지역 본부장을 만났다. 이들로부터 올해 세계 시장 공략의 비법을 들어봤다.

 함정오(55) 중국지역 본부장은 올해 중국 시장 공략의 키워드로 ‘여성’을 꼽았다. 중국은 올해부터 한 가정당 1명으로 묶였던 산아제한이 풀린다. 이로 인해 올 한 해 태어날 신생아는 약 1000만 명(추정)에 달한다. 그는 “중산층의 급부상과 함께 육아에 관심 많은 여성들의 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며 “아동용 완구, 유아용품, 교육 사업을 노려야 한다”고 추천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에서도 여성 중심 소비가 대세다. 한류의 영향으로 국산 화장품, 인삼 추출물 같은 건강식품 소비도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돼 있어 이를 활용한 사업도 유망하다.

 김종춘(53) 북미지역 관장은 “한국에서 ‘응답하라 1994’가 유행하는 것처럼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에서도 복고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1930~50년산 청바지 등 의류들이 고가에 거래되고, LP 음반, 소형 서점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기업들은 복고 상품을 직접 수출하기보다는 옛 느낌을 살린 디자인을 적용하는 형태로 시장진출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시장도 관심 대상이다. 그는 “교육에 관심이 높은 히스패닉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 한류를 활용한 미용사업도 추천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일본 시장 최대 위험요소는 엔저다. 하지만 ‘혐한(嫌韓)’도 악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혁(53) 일본지역 본부장은 “일본은 한류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라며 “이제는 한류에 의존하기보다 프리미엄 한국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에서 ‘대박’ 상품으로 꼽혔던 침구청소기, 아줌마들의 집안 운동기구 필수품이었던 ‘트위스트런’처럼 일본 시장에서도 통하는 고품질, 아이디어 제품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5년간의 긴 경기침체 터널에서 벗어난 유럽. 정종태(53) 유럽지역 본부장은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한류를 기반으로 한 문화산업, 연평균 11%씩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전했다. 한류 열풍이 갓 시작된 유럽에선 “향후 2~3년이 김·라면 등의 식품업체들에 호기”라고 했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로 매물로 나온 자동차 부품, 기계 업체 등 우량기업을 사들일 기회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브라질 월드컵 등의 호재가 있는 중남미 시장에선 중산층을 겨냥한 의료기기,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보안사업이 기회가 될 전망이다. 2011년 이후부터 5%대의 고속성장 중인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나이지리아(화장품), 모잠비크(천연자원), 가나(태양전지), 수단(타이어·안경렌즈) 등이 유망 시장으로 꼽힌다. 중동지역에선 정보기술(IT)·의료·교육 사업을,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선 도로 등 사회 인프라 사업 등이 올 한 해 각광받을 전망이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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