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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선거 리스크, 신흥국 위기 부추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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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6일(현지시간) 태국 수도 방콕 중심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한 여성이 태국 국기를 흔들며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잉락 친나왓 총리와 여당은 2월 조기 총선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이에 맞서 야권은 13일 정부 폐쇄 시위로 맞설 예정이어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 [방콕 로이터=뉴시스]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태국 방콕 중심가에 위치한 민주기념탑 앞.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대로를 가득 메웠다. 이들은 7㎞ 넘게 행진하며 “잉락 친나왓 총리 정권 퇴진”과 “2월 조기 총선 반대”를 외쳤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의 아카낫 프롬판 대변인은 “7일에도, 9일에도 집회를 연다. 오는 13일 대대적인 ‘방콕 셧다운(정부 폐쇄)’ 시위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 ‘더 네이션’은 “정치 불안으로 바트화 환전량이 급감하는 등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태국 바트화 가치는 하루도 쉬지 않고 떨어졌다. 이날 달러당 바트 값은 33바트로 4년래 최저치였고, 태국 주가도 1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새해부터 세계 경제가 ‘선거 리스크’에 직면했다. 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유난히 굵직굵직한 선거를 치르는 나라가 많다. 더욱이 경제 기반이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신흥국에서 총선과 대선이 몰려 있다. 인도는 5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총선(4월)과 대선(7월)을 한꺼번에 치른다. 태국은 2월 조기 총선 때문에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5일 일찌감치 총선을 치른 방글라데시도 예외가 아니다. 야당은 불법 선거라며 아예 총선에 참여하지 않고 거리로 나섰다. 여당과 야당 시위대가 충돌하며 유혈사태로 번졌다. 올 초 아시아 증시와 통화가치가 나란히 하락하기 시작한 이유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의 제조업 경기 부진만큼이나 태국 등 신흥국의 정치 불안이 악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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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리스크는 아시아에 한정되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경제 기초체력이 약한 헝가리·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선거가 집중돼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앙지였던 그리스·이탈리아도 불안한 연정 탓에 언제든 선거 국면으로 돌입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중남미에선 브라질(총·대선), 콜롬비아(총·대선), 우루과이(총선)가 나란히 큰 선거를 치른다.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총선이 예정돼 있다.

 시장은 선거 전후의 불확실성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게다가 올해 선거가 몰려 있는 나라 대부분의 정치구도가 ‘여소야대’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경제 정책을 수립해 발표하더라도 실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오랜 경제난에 성난 민심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안기는 선심 정책을 각 당이 경쟁적으로 쏟아내 재정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선거에서 승리해 새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저성장에 높은 물가상승률, 여기에 늘어난 나랏빚까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라 신흥국으로 유입됐던 핫머니가 한꺼번에 선진국으로 회귀하면서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세계 각국에서 새로 선출될 신흥국 리더가 직면할 위기”라고 분석했다. ‘경제위기→정치 불안→자본유출 확대→경제위기 심화’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경고다.

 국제금융센터 안남기 부장은 “갈등이 각국 안에서만 그친다면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신흥국 경제의 비중이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취약 고리에서 시작된 위기가 신흥국 전체로 번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진국 역시 선거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재정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올해 나란히 의회 선거를 치른다. 안 부장은 “올해는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와 함께 선거로 인한 정치 혼란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신흥국 중 인도·태국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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