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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들이여, 기대와 반대로 가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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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인식
강인식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2013년 대한민국의 주요 보스들은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노선을 성실히 지켰고, 자기 진영만을 위해 싸웠다. 그들은 예상했던 대로 말하고 결정했다. 지지자들은 보스를 더욱 사랑하게 됐으며 누가 적인지 분명히 알게 됐다.

 22일간 이어진 역대 최장기간 철도파업에서도 정치는 그랬다. 새누리당은 철도노조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불법파업의 경제적 손실만을 얘기했다. 민주당은 민영화 괴담에 올라타 ‘반(反)박근혜 효과’를 누리려 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싼 논란을 정치 지도자들은 완벽하게 정쟁화했다.

 그래서 요즘 보스들의 드라마는 재미가 떨어진다.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빤하다.

 ‘낯설게 하기’는 예술가뿐 아니라 정치 지도자의 미덕이기도 하다. 보수·반공정권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토지공개념을 내세우고, 진보 색채 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을 때를 되돌아보자. 골수 지지자들은 배신을 얘기했지만 오히려 국정 지지도는 상승했다. 자신을 보스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증오하는 이들의 마음을 샀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지율이 올라가면 보스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결국 자신과 자기 진영에 좋은 일이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후보는 유연했다.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봉하마을에 내려가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야당의 브랜드였던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깃발로 재포장해냈다. 대한민국 전체의 리더가 되기 위해 중도층과 반대편 국민의 마음을 하나라도 더 얻으려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엔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차기를 노리는 문재인 의원도 기대와 반대로 가야 승산이 있다. 선수 당사자가 지난 선거를 계속 얘기하면 지지자들은 환호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자기 진영에 고립될 수밖에 없다. 어떤 종류의 싸움이든 패자가 패배를 선언하지 않으면 패자를 응원했던 이들은 승부의 결론을 낼 수 없다.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 중간지대와 반대편에 있는 국민을 다 잃게 될지 모른다.

 대선 이후 승자와 패자 모두 “하방(下方)”을 외치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었다. 승자는 자신을 찍지 않은 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겠다고 했고, 패자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다수의 마음을 다음엔 꼭 얻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3년엔 어떤 지도자도 하방하지 못했고 기대와 반대로 가지 못했다.

 예측된 플레이는 먹히지 않는다. 낯선 세상을 구축하지 못한 문학은 감동이 없다. 보수주의만을 얘기하는 보수진영 지도자도, 진보주의만을 얘기하는 진보진영 지도자도 대한민국 전체의 리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엔 가끔 자기 진영을 배신하며 기대와 반대로 가는 모습도 보여주시길….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