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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멕시코」인은 같은 핏줄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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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멕시코시티=김영희 특파원】「멕시코」의「에체베리아」대통령은 김용식 외무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인과「멕시코」인들은 같은 핏줄을 이어 받았다고 말했다.「에체베리아」대통령의 이 말이 단순한 외교적「제스처」가 아니라는 사실을「멕시코」시내의 유명한 고고학 박물관에 가보면 확인할 수가 있다. 다만 한국사람의 선조들 만이「멕시코」사람의 선조와 같은 혈통이라는 뜻은 아니고「멕시코」뿐 아니라 남-북미주대륙에 흩어져 살면서「마야」「아즈네크」「잉카」등의 문명을 꽃피운「인디언」들이「뭉고」계의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
지금의「멕시코」인구는 4천7백만명인데 그중 60%가「인디언」과「스페인」의 혼혈이고, 30%가 순수한「인디언」, 나머지 10%가 순수한「스페인」계 백인이다.「멕시코」의 초대 대통령「후아레스」는 순종의「인디언」이었고 그 뒤의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인디언」과「스페인」혼혈이었다. 혼혈 아니면 대통령 당선은 불가능한 것으로 통한다.
「멕시코」고고학 박물관의「멕시코」인 기원 실에는 한 폭의 작은 그림이 걸려있다. 발가벗은 소년의 뒷모습인데 엉덩이 위. 아 랫 등에 소위「몽고반점」이라고 불리는 푸른 점이 있다. 그것은 몽고계의 사람만이 출생부터 네 살이나 다섯 살 때까지 지니고 있는 반점이다.
소년의 그림 옆에 걸려있는 지도에는「몽고반점」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종의 분포도가 그려져 있는데 몽고를 중심으로 한 중부「아시아」이동과 남-북 미주대륙이 몽고반점 권으로 표시되어 있다.
몽고반점 이외도 양쪽 끝이 위로 치켜진 둥근 눈의 분포도 역시 대체로 몽고반점 분포도와 일치한다.
이 박물관의 민족이동 실에는 빙하시대에 고비사막일대의 수렵민족들이「시베리아」를 거치고,「아시아」대륙과 미주대륙을 가르는「베링」해협을 건너「알래스카」에 상륙하여 남미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을 그린 대형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멕시코」뿐 아니라 남미일대, 특히「에콰도르」「페루」「파라과이」「엘살바도르」「온두라스」일대에서는 그 지역 원주민들의 몽고 발상 설이 이제는 통설로 되어 있다.「마야」문명의 본산지인「멕시코」의「유카탄」반도를 비롯하여 중남미일대의 도처에서 몽고반점과 함께 몽고족의 생활풍습, 생활도구가 보편적이라는 사실도 이런 통설을 뒷받침한다. 인구 2백77만 가운데 혼혈이 40%, 「인디언」이 46%를 차지하는「페루」를 처음 방문하는 동양사람들은 누구나 고향에 돌아온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닮은 모습, 비슷한 체구들을 많이 본다.
「파라과이」의「과라니」족은 특히 몽고계의 풍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북미 쪽에서는「알래스카」대학의「캠퍼스」에서「몽고」의 고비사막에서 발굴된 것과 같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학자들은 몽고족의 미주대륙이동의 시작을 빙하시대로 추정한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베링」해협은「아시아」와 미주대륙을 잇는 사실상의 육로구실을 했을 것으로 해석한다.
기원전 9천년까지 오늘날「인디언」이라고 통칭되는 몽고족들이「알래스카」에서「마젤란」해협에 이르는 대륙의 생존 가능한 모든 지역을 점령하고는 초대형코끼리인「매머드」 사냥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훗날「유카탄」반도에「마야」문명을 개화시킨「인디언」의 선조인 수렵민족이「멕시코」에 들어선 것은 후기 빙하시대일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5천년께 빙판이 녹기 시작하면서 미주대륙의 기온은 오르기 시작하고, 건조한 기온 때문에 그때까지의 초원은 사막으로 변해갔다. 과잉수렵으로「매머드」사냥이 종말을 고했다. 그 중에서도「마야」족은 기원전 3천년께 북미대륙에서 남하하여 서부「과테말라」의 고원지대에 정착했다가 그것이「우아스테크」「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정착했을 것 같다는 설이다. 「할리우드」에서 대량 생산되는 서부영화는「인디언」들을 미개인의 상징으로 그려 놓는다. 그러나 1520년「코르테스」가 지휘하는「스페인」정복자들이「멕시코」의 「아즈데크」제국을 정복할 때까지 몽고와「시베리아」에서「베링」해협을 건너온 이들 선두 자는「마야」「잉카」「아즈테크」등「인디언」문명을 꽃피운 문명인들이었다.
「아즈테크」문명연구의 대가인「G·C·베일런트」는 중남미대륙에「인디언」문명이 선주하지 않았던들 오늘날「스페인」식민지문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인디언」들의「잉카」문명의 고적을 관광으로 팔아먹고 사는「페루」같은 나라의 관광안내서는 순수한「인디오」의 천재보다는 거기다「스페인」을 접목한「혼합문명」의 자취를 강조한다.
이런 사실들은「존·웨인」의 날쌘 권총솜씨와 더불어「인디오」들의 비애를 부채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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