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다시 본 소련-동완(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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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독 풀 새도 없이>
『소련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국립「모스크바」대학교는 「러시아」어 세 낱말의 정식 명칭의 머리 글자만을 합쳐서 「엠계우」라고 부른다. 우리의 서울 운동장에 해당하는「레닌」중앙 경기장은 「루즈니키」라고 부른다. 그것은 「모스크바」 강변의 초원에 붙여진 고장 이름이리라. 역시 참가국들의 국기가 「스탠드」위의 기봉에 휘날리고 있다. 태극기가 보인다.
우리가 분명 참가국 선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둘째 게양대에 태극기>
「엠계우」의 정면을 바라보면서 「모스크바」강을 건너면 잠시 대학건물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르막 길이 된다. 「레닌」산에 올라서면 중앙 「피오너르」(소년단원) 체육장이 왼편에 보인다. 원래 땅이 넓은 나라인지라 이곳도 역시 그 규모가 큰 것 같다. 곧 「엠계우」후문에 도착, 출구와 입구를 갈라 양쪽에 수위실이 있는 철책 대문을 지나 오른편 두 번째 국기 게양대의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건물의 후면 출입구에 「버스」는 멈춰선다.
우리 기수단에 배당된 B동 14층에 올라가서 거실을 배당한다. 이곳은 학부 학생들의 숙소라고 한다. 번호패가 붙은 「도어」를 열고 들어가면 한평 반쯤되는 공간 좌우에 세면소와 「샤워」를 겸한 방·변소가 있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 혹은 두개의 간이 철침대·소탁자와 의자가 각각 둘, 책상·옷장이 있는 2∼4평 정도의 방이다. 개중에는 화장실과 변소가 전혀 다른 호실로 되어있는 곳도 있어 가지가지다.
소련측은 방 배당에 따른 단원명단을 만들기에 바쁘다. 「러시아」문자로 표기하기 어려운 우리들의 이름을 주일 소련 대사관이 발급한 출입국 사증과 맞추도록 소련측에 협력해야 했다.
「유니버시아드」대회 참가 선수자격 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이 곳에서의 급식을 받을 수 있는 식권이 발급된다고 한다. 예비심사는 소련측 직원이 한다.

<학생증·졸업증을 조사>
한사람 한사람, 특히 선수들에 대해서는 학생증 혹은 영문 졸업증명서의 유무를 따진다. 내용이야 어떻든 있으면 그것으로 통과였다. 젊은 친구는 영리한 사나이다. 우리 글로 적힌 학생증을 통역을 통해서 확인 하려고는 하지 않으니 말이다.
본 심사는 「라틴」계 위원들이 더욱 간단히 끝마쳐 주었다. 그러나 숙소 도착이 늦었던데다가 방배당 명단 작성에 시간을 잡았고 또 식권을 발급하는 중년 여성의 사무 처리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완만하다. 따라서 저녁 식사는 매우 늦어 선수들은 새날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취침했다. 사무처리나 행동의 기민성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인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속성이다. 억류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일들이 뇌리를 오간다.

<제2일 아침부터 비와>
FISU 집행위원으로 선출된 김규택씨가 자정이 지나 자신의 숙소로 돌아갈 차편이 없다기에 소련측에 「택시」를 부르도록 교섭하니 적어도 한시간은 기다려야 되리라고 한다. 「모스크바」제2일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 선수들의 훈련장소도 「옘계우」의 실내구장을 쓸 수 있는 농구를 제외하고 배구와 정구는 분명치가 않다.
아침 식전에 농구 선수들은 감독·「코치」의 인솔하에 우비도 없이 호우를 무릅쓰고 구장으로 향한다. 괴상한 현상이다. 빗물이 흐르는 「아스팔트」포장도로 위를 수없이 지렁이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물기가 많은 시기를 이용하여 그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일까? 여기 저기서 우리 아가씨들의 비명이 들린다. 건물을 지키고 있는 군인 제복 차림의 청년에게 교섭하여 선수들이 연습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배구와 「테니스」는 연습장이 멀다는 이야기다. 점심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감독·「코치」의 인솔하에 「버스」로 「소쿨리니키」구장으로 향한다. 그 곳은 배구경기가 있을 곳 중의 하나이며 배구의 주경기장이라고 한다.

<배구장 가는데 1시간>
거의 한 시간이나 걸려 신축 건물로 보이는 실내구장에 도착한다. 밖에서는 청소작업이 한창이다. 쓰레기를 실어내고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살수차로 씻어내고 있다. 구장 내부에서는 아직 전공·칠장이들이 잔손질을 하고 있다.
우리의 소련측 안내인 「마르가로프」씨는 휴식하면서 상소리를 주고받는 노동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러시아」어를 아는 외국 동지에게 창피하다는 이유이다. 젊고 늙은 노동자들의 대꾸가 걸작이다. 『외국 사람들은 상소리도 못하는 병신인가?』 마침내 그들은 「페인트」칠을 하는 장소에서의 흡연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군복차림의 장교에게 쫓겨난다.

<쓰레기 청소작업 한창>
이곳 「소콜리니키」 구장은 원래 실내 빙상경기(아이스·하키)장으로 만든 것이다. 한가운데에 그물을 쳐서 임시로 두 면의 배구 경기장으로 쓸 것이란다. 필요한 면적의 마루를 깔고 「페인트」를 칠했는데 아직 완전히 건조하지 않았다.
구장 관리 책임자를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층계에도 아직 쓰레기가 남아 있고 「페인트」를 칠한 사무실의 벽은 화판을 붙인 것이다. 사람들이 혼잡을 이루고 있어 사양하여 복도에 선다. 3층에서 쓰레기가 내려온다. 남루한 노동복 차림의 아가씨와 중년 부인이 앞 뒤에 서서 들것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남루한 옷차림 노동자>
또 다시 포로로 억류생활을 한 1945년∼49년 시절이 머리에 떠오른다.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그들에게 영합했다는 죄로 수많은 젊은 남녀가 극동지방 강제노동 수용소로 추방당했다. 그들의 용모와 행동거지로 보아 막노동자들이 아님이 분명했다. 지금 눈앞에 보는 젊은 여성이 당시의 그런 유형에 속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심에 서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녀와 아까 만난 노동자들은 아무리 노동을 위한 옷차림이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남루하고 더럽지 않은가? 아직도 의류나 세탁비누의 공급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수입이 물가에 비겨 너무나 적은 것일까? 밖에 있는 배구와 「테니스·코트」에서 연습은 시작했으나 비가 뿌리기 시작하고 이곳 실내경기장은 도저히 이용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린 「마르카로프」씨는 다시 다른 곳을 찾아가자고 한다. 그곳도 이번 대회에 사용될 경기장 중의 하나라고 한다. 「레닌」 훈장을 받은 국립 중앙체육대학의 실내구장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를 믿고 또 다른 도리도 없어 다시 「버스」에 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소 안내원 출신교 자랑>
이 체육대학은 소 연방 안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규모가 큰 체육대학이며 수많은 체육가와 체육지도자·교사를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그것은 역시 이 대학의 졸업생인 「마르카로프」씨의 이야기다. 이번 대회에 쓰는 구장만 하더라도 제1호에서 제5호까지 있으며 그 외에도 역도·「펜싱」·체조·「레슬링」 등의 경기장도 있어 눈으로 보아 그의 말이 크게 과장도 아닌 듯 하다.
우리 선수들은 여독을 풀 사이도 없이 이곳에서 하오 6시까지 열심히 연습했다.

<이 글에 실린 사진은 모두 동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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