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닌 기성용·지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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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기(Ki)! 기! 기!”

 2일 선덜랜드 기차역에서 내려 선덜랜드-애스턴 빌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0라운드를 취재하러 가는 길. 선덜랜드 팬들은 동양인 기자를 보고 기성용(25·선덜랜드)의 성(姓)을 연호했다. 팀이 비록 최하위지만 올 시즌 스완지시티에서 임대돼 고군분투 중인 기성용에 대한 애정 표현이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앞의 가게 주인은 기성용의 나라에서 왔다며 핫도그에 치즈를 하나 더 얹어줬다.

 선덜랜드 매치 매거진(경기 당일 배포하는 잡지)에는 기성용이 영문 이름(SUNGYUENG)의 앞글자를 딴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한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기성용은 가장 힘들었던 원정지로 “이란”, 가장 버거웠던 상대로 “맨체스터시티의 야야 투레”, 인생 최고의 골로 “2011년 셀틱 시절 리그컵 결승골”, 가장 친한 선수로 “볼턴의 이청용”, 최고의 미드필더로 “지네딘 지단”을 꼽았다.

 킥오프를 앞두고 180도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기자실 곳곳에서 “지(Ji)? 지?”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선덜랜드 주전경쟁에서 밀린 지동원(23)이 4개월 만에 선발 명단에 포함된 게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지동원은 장내 아나운서의 명단 소개 때 유일하게 홈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최초의 한 팀 소속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동시 출전.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도, 오른쪽 날개 지동원도 독을 품고 뛰었다. 기성용은 후반 18분 아그본라허의 뒤를 쫓다 그가 휘두른 팔꿈치에 입술을 얻어맞았다. 기성용은 아그본라허를 쫓아가 따졌고, 출혈이 있었지만 응급처치를 하지 않아 옐로 카드를 받았다. 거스 포옛 선덜랜드 감독은 상처를 보여주며 하소연하는 기성용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달랬다.

 지동원도 후반 11분 거친 파울을 가한 안드레아스 바이만에게 달려가 가슴을 들이밀며 항의했다. 별명인 ‘돌부처’답지 않게 투쟁적인 모습이었다.

 EPL 패스 성공률 1위 기성용은 농구의 포인트 가드처럼 볼배급을 전담했다. 지동원도 단점으로 지적되던 소극적인 모습을 버리고 과감하게 슈팅을 날렸다. 지동원은 후반 22분 교체 아웃될 때 야유가 아닌 박수를 받았다. 팀은 0-1로 졌지만 둘 다 제 몫을 다했다. 영국 스포츠 전문 매체 스카이스포츠는 기성용에게 팀 내 최고인 7점을 주며 “중원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고 했다. 지동원에게는 “여러 모습이 혼재했다”며 6점을 부여했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애스턴 빌라 공격수 크리스티안 벤테케(24)였다. 한국과 월드컵에서 맞붙을 벨기에 출신으로 별명이 ‘괴물’이다. 무릎 부상 후 복귀전이었지만 월등한 신체조건(1m90㎝·83㎏)에 상대 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최전방에서 욕심을 부리기보다 이청용처럼 동료를 잘 활용했다. 놀라울 만큼 유연한 방향 전환으로 수비진을 따돌린 뒤 연결하는 슈팅도 위력적이었다. 한국의 경계대상 리스트에 넣어야 할 선수였다.

선덜랜드(영국)=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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