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미결의 종장(3)|제네바 정치회의(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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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54년1월25일부터 베를린에서 3주간 계속된 미·영·불·소의 4상 회의는 원래 독일과 오스트리아 문제가 주의제였지만 부산물로 한국문제의 정치 본회의 개최에 합의를 보았다. 약소국 문제가 직접 당사국을 떠나, 열강의 손에서 요리된 또 하나의 예라 하겠다. 더욱이 6·25남침의 원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측이 중립국으로서 한국문제처리 참가를 주장한 소련이 베를린 4창 회의에서는 비로소 직접 한국문제관계국으로 등장했다는데서 주목을 끌었다.
미국 자신도 정치회의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이를 규정한 휴전협정 제4조를 어차피 이행해야 하는 만큼 무기휴회로 들어간 판문점의 예비회담을 뛰어넘어 북한·중공의 상전인 소련과의 직거래로 정치본회의를 실현코자 했던 것이다. 소련 또한 중립국으로서의 한국문제참여가 최상책이지만 그것이 안될 때에는 자격이야 어떻든 간에 정치본회의의 참석자체는 여러모로 자기편에 이롭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래서 베를린 4상 회의에서는 본회제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문제는 하나도 합의를 못본채 부수적인 한국문제의 공치본회의를 열어 6·25를 결산해 보자는데 뜻을 같이했다.

<행동통일 못 보였던 서방측>
이로써 소련은 제네바 정치회의에서는 그동안의 복면을 벗고, 명실공히 공산측의 주역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공산측은 앞서도 지적했듯이 제네바 경치회의에서 비록 한국에서의 무력침략에는 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반반의 성패를 기록했지만, 이를 국제의 교무대에서 다시 성취하려고 전력투구했다.
이는 소련·중공·북한이 모두 합쳐 6백20명의 방대한 대표단을 제네바에 투입한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무렵의 세계정세, 특히 아시아에서의 사태발전은 공산측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 예를 들면, 제네바 회의 후반부를 차지한 인도차이나에서 공산 호지명군은 디엔비엔푸 요새를 거의 제압하고 있었다(주=함락은 5월10일). 그리고 인도네시아 인도 실론 버마 등 공산측이 판문점 정치예비회담에서 정치회담참가를 주장한 소위 아시아 중립국들도 다분히 소련과 중공에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프랑스는 약한 입장에서 인도차이나 전쟁을 협상을 통해 마무리하려고 하였고, 영국 또한 유엔이 한국참전국이기는 하지만 벌써 중국 대륙을 지배한 중공과의 수교를 염두에 두었던 만큼 제네바 회의에서 서방측은 비록 참가국수로는 16대3으로 우위를 보였지만 행동통일을 기할 수 없었다. 이래서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서방측은 처음부터 수세에 몰려 고전을 면치 못했고, 특히 휴전반대와 북진통일을 국시로 삼았던 한국대표단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더 심화됐다. 그러나 이런 고군분투의 상태에서도 일대 반격을 시도한 것이 14개조제안 제출이었는데 그 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통일된 독립민주 한국을 수립하기 위해서 유엔 감시 하에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②대한민국헌법절차에 따라 남북한에서 동시에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③선거는 본 제안 채택 6개월 안에 실시한다. ④유엔 감시원은 선거전이나 선거중이나 선거 후에 전 한국에서 완전히 행동의 자유를 누리며 자유분위기보강에 노력한다. ⑤입후보자와 선거운동원, 그리고 이들 가족은 선거전이나 선거중이나 선거 후에 행동·언론 및 그밖의 모든 인권의 자유를 누린다. ⑥선거는 비밀투표가 보장된다. ⑦전국국회는 인구비례제로 선출한다. ⑧정확한 의원 수 배정을 위해 유엔 감시 하에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⑨전국국회는 선거 후 즉시 서울에서 개회한다. ⑩다음과 같은 문제는 전국국회에서 결정한다. ㈀대통령의 새로운 선출여부 ㈁대한민국의 현 헌법의 고정여부 ㈂군대의 해산여부 ⑪대한민국의 기존헌법은 전국국회에서 개정하지 않는 한 계속효력을 갖는다. ⑫중공군은 선거실시 1개월전에 철수를 끝내야한다. ⑬유엔군 철수도 유효한 지배력이 완전히 달성되고 유엔에 의해 보장될 때가지 완전 철수해서는 안된다. ⑭통일독립민주한국의 영토보전과 독립은 유엔에 의해 보장된다.

<우리주도의 남북통일에 주안>
이상의 14개조제안은 대한민족의 통일정책이 결코 교조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끌었고, 북한의 남일 제안을 제압하는데 큰 몫을 했다. 당시 한국정책으로서는 일대전환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 실은 종래의 북한만의 선거보다도 더 웅대한 구상과 묘미가 담긴 대한민국주도하의 한국통일을 내세운 이 제안 제출 경우에 대해서 제네바회의 한국대표들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양유찬씨(당시 주미대사·제네바회의 한국대표=현 미국 거재·일시 귀국때 회견·76) <변 장관은 회의 2일째인 4월27일에 기조연설을 했는데, 이때는 북한만의 자유총선거를 주장했어요. 5월11일에 변 장관이 두번째 연설할 때에는 그달 20일에 실시되는 대한민국의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 북한도 참여하라고 호소했구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북한지역만 총선거를 해야한다는 우리 경부의 기본입장에 변화는 없었던 겁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남일외상은 역시 화의 2일째날 연설에서 소위 6개 항목의 제안을 내놓았는데 골자는 선거를 준비주관하기 위한 전 조선위원회를 만들자는 거예요. 이 위원회는 남한의 국회의원과 북한의 최고화의인민회의대의원과 남북한의 최대의 민주사회단체대표를 동수 비율로 구성하자는 거였어요. 그밖에 남북한의 경제·문화관계 발전을 수립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자고 했고, 모든 외국군도 철수시키자고 주장했어요.

<이 박사 꾸지람들을 까 걱정도>
이렇게 처음부터 공산측의 외교공세가 꽤 적극적이어서 회의분위기를 보니까 우리의 북한만의 총선거제 안 가지고는 안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우방들과 상의해서 내놓은게 14개조제안입니다. 이 안을 제출할 때 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몹시 걱정들을 했고 변 장관은 밤잠도 못자고 조바심을 했어요. 그래서 변 장관보고 대통령한테는 양유찬이가 자꾸 우겨서 그런 안을 내놓았다고 보고하라고까지 이야기했어요. 보다시피 보고하라고까지 이야기했어요. 보다시피 14개조제안은 퍽 묘미가 있는 안이에요.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제안했지만 핵심은 대한민국이 위주가 돼서 통일하자는 거예요.>
▲홍진기씨(당시 법무차관·제네바 회의한국대표=현 중앙일보사장·57)<제네바로 가기 얼마전에 변 장관이 부르더니, 정치본회의에 내놓을 통일 방안을 준비하라고 합디다. 종래의 고식적인 북한만의 선거 아닌 새로운 통일안을 마련해야겠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 퍽 고심끝에 7개조인가의 제안을 짰는데 기본골격은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는,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통일성을 갖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거요. 이것은 곧 대한민국 헌법의 유지하는 이야기지. 이 원칙을 생각해내니까 참 기쁩디다.
이 제안에 따라 남한에서 이미 선출된 국회는 어떻게 되느냐하면 남북동시선거를 할 때, 마침 임기가 다됐으면 문제없고, 다 안되었으면 통일이라는 민족적대파업을 위해서 자진해산결의를 하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헌법에도 위반되지 않고 남한에서 선거를 할 수 있거든. 변 장관이 제네바에서 내가 만든 이 7개조에다 그후의 사태발전을 감안해서 몇가지 더 추가수정해서 14개조를 제안한거요.

<남일의 통일방안은 구태의연>
이 대통령께서는 한·일 회담 때도 그랬지만 우리가 제네바에 있는 동안, 별다른 구체적 지시는 없었고 이14개조제안도 제출해놓고 보고를 했어요. 한편 남일이가 내놓은 통일 방안의 기본골자는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하러 평양갔을 때 그들이 제안한 것과 똑같애요. 그리고 동독이 서독에 제의했던 서독안과도 똑같구요.>
유엔 16개국과 한국대표는 이 14개조제안 제출을 계기로 공산측에 모처럼의 반격을 가했다. 특히 남일의 전 조선위원회 설치 제안에 어느 정도 구미를 느끼던 유엔측의 일부 영 연방대표들도 한국의 14개조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제안은 서방측이 6월15일에 정치회의를 일방적으로 결렬시키고 공산측의 지연전술을 봉쇄하는데 주무기로 사용되었다. 즉 서방측은 공산측이 한국이 내놓은 남북한 동시 선거를 거부한 만큼 이상 더 한국정치문제의 토의가 필요 없게 됐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요일지(53년7월16일∼21일)
※16일▲공산군, 동부전선에 2년 내의 최대 유엔군 공격저지 위해 소제 탱크 16대 투입 ▲유엔 공군 전투기 연1천대 이상 출격 ▲클라크 사령관, 서울 비래 이 대통령과 회담.
※17일▲한국군, 중동부 전선에서 반격계속 ▲유엔 공군 B·29 52년8월 이내 최대폭격- 중동부 전선에 2백30t의 고성능폭탄투하 ▲덜레스 미 국무관장, 이 대통령은 휴전 방해 않는다고 전국에 방송
※18일▲한국군, 금성강 남방 5개 고지탈환 ▲중공군, 중동부전선 서측의 유엔군 중요고지탈취 ▲공산군, 휴전협정 19일 조인된다고 선전방송.
※19일▲유엔군 포병대, 금성강 도하하려는 중공군1개 대대 포착 공격 ▲남일공산측 대표, 휴전협정 조인 준비에 관한 토의있다고 언명.
※20일 ▲미 해병대, 중공군 3천명의 공격받고 서부 전선 백림고지서 후퇴▲북경방송, 중립국 감시안 체코 폴란드 대표 북경도착 보도.
※21일▲중공군, 금성강 서측 한국군 진지 야간공격 ▲유엔 공군, 신의주 비행장 및 황주 적조거장폭격 ▲박옥규 해군 참모총장 취임식 거행 ▲서울지검, 조병옥 석방.
◆정정=본 연재486회의 한국대표명단과 487회의 사진설명 중의 최정우 교수는 최정우 교수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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