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병상아 말문 잊은 중년이 감격의 포옹 6·25때 북한군에 강제징집 거제도선 철조망사이에 두고 수용 지금은 순박한 농부로 이젠 함께 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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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형임!』『병상아,살아있었구나!』중년의 형제는 어린애처럼 얼싸안고 감격의 울음을 그칠줄 몰랐다. 6·18반공포로 석방때 자유의 몸에 안긴 형제가 반공 포로 석방 20주년을 맞은 18일 중앙일보사의 주선으로 극적으로 만났다. 지금은 순박한 농부가 돼버린 동생이 보리를 베고있던 보리밭에서였다.
형 장병렬씨(44·현주소 경기 이천군 설성면 장릉리)와 동생 병상씨(42· 경기 시흥군 수암면 장상리)는 6·25때 고향인 강원도 김화군 원동면 장연리에서 각각 강제 징집 당해 서로 소식이 끊겼다가 꼭 2O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다시 만난 것이다.
이들의 상봉은 중앙일보 3면에 연재중인『민족의 증급사」이 인연이 됐다.
동생 병상씨의 처남 임호성군 (18· 서울대경상3년) 이 『반공포로로 석방된 자형이 같은 수용소에 있었다는 형님을 늘 애타게 찾고 있는데 지장을 통해 찾아줄 길이 없는지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중앙일보에 보내 왔었다.
이 호소가 지난 11일자『민족의 중급」「알림」에 게재 됐다.형 병렬씨의 4촌 동서인 박정화씨(44·서울성동구금호동1가7·상업)가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병렬씨의 기사를 확인,7일 급히 이천으로 내려가 병렬씨를 데리고 본사에 찾아왔다.
본사에서 병상씨의 집을 안내,잠시도 잊지 못하던 형제는 감격적인 해후를 맞게 되었다.
형제가 서로 복받치는 감격을 억제하고 말문을 연 것은 한시간도 훨씬 지난후 였다.
6·25가 나기 전 이들 형제는 지금은 휴전선이 가로막고있는 고향 김화에서 부친 장덕우씨 (당시 63세) 밑에 4남1녀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가 3남인 병렬씨가 맨 처음 북한 공산군에 끌려갔고 다음에는 2남 「옹연」씨 (당시24세) 끝으로 4남 병상씨가 차례로 공산군대에 나가게되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삼형제가 함께 수용되어 서로 생사를 확인할 기회는 있었다.
그 때는『서로 살아있었구나』하는 반가운 마음 뿐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감시병의 눈을 피해 4겹의 철조망사이로 서로 손짓을 보내는 정도 였다는 것이다.
삼형제중 흉연씨는 거제수용소 76여단에,병렬씨는 82여단,병상씨는83여단에 각각 수용되었었는데 병렬씨와 병상씨는 이웃여단이라 비교적 자주 얼굴을 볼수 있었으나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흉연씨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병상씨는 흉연씨를 두 번 보았고 병렬씨는 단 한번 얼굴을 스쳤을뿐 그후에는 볼수 없었다.
그러나 병렬씨와 병상씨는 서로 언젠가는 다시 만날수 있으리라고 믿을수 있었던 것은 82·83여단이 모두 반공 포로 수용된 여단이었기 때문이다. 흉연씨의 76여단은 친공포로들의 집단이어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못했다한다.
6·25가 나기 3개월 전인 50년3월 맨처음으로 북한군에 끌려간 병렬씨는 원산해변에서 약1개월간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되었다.6·25직후 서울을 거쳐 인천부근에서 낙오되어 국군에게 포로가 됐다. 원산에서 서울까지 계속 보도로만 행군하던 북괴군은 피곤해서 산기슭에 쓰러져 잠을 자다가 낙오된 채 국군에게 잡혀 부산 가야수용소에 옮겨졌다.
병상씨는 50년12월10일 북한군 82사단에 배속되어「유엔」군의 1.4후퇴와 함께 태백산맥을타고 팔공산 지구까지 내려가「게릴라」로 활약했다.그 뒤 아군의 치열한 소탕전에 패주,소속부대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51년2윌23일 동료병사인 김두성씨와 함께 투항,가야·거제 수용소를 거쳐 마산수용소에서 6·18을 맞이했다.
이들 형제는 석방된 후 다시 국군에 지윈 입대하여 만기제대 한후 모두 현재의 거주지에 정착,병렬씨는 정년12월에 권혁수씨(38) 와 결혼, 금옥양 (11· 설성국4년)등 2남1녀를,병상씨는 59년 10월 임점옥씨 (36)와 결혼, 명기군 (14· 안산중2년) 등 3남1녀를 두고있다.
이들은 제대 후 아무 연고가 없는 고장에 정착해 머슴살이로 시작해 지금은 10마지기 안팎의 땅을 부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앞으로 형제가 다시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살자고 얼싸 안은채 떨어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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