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호봉제 기업 '성과 연봉제' 전환 빨라질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에 대한 정의를 내림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초과근로수당이나 연·월차 수당, 퇴직금과 같은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각종 인건비의 부담을 줄이려면 상여금과 수당체계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기업 입장에선 불어나는 인건비를 생산성을 높여 상쇄시키는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성과와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성과·직무형으로 바꿔야 한다.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돈을 줄이고, 변동성 임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미 성과 위주의 연봉제로 임금구조를 바꾼 삼성은 “이번 판결에 따른 큰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0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력부가조사에 따르면 호봉제를 택하고 있는 기업은 75.5%에 달했다.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도 절반가량은 호봉급적 임금결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무늬만 연봉제였다.

 매년 자동적으로 일정 비율씩 임금이 인상되는 호봉제가 많다 보니 기업들은 기본급을 낮추고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을 늘리는 형태로 임금을 조정해왔다. 기본급이 낮으면 상여금이나 수당의 수를 늘리더라도 퇴직금이나 연·월차수당,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적게 줄 수 있어서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비과세 소득으로 분류되는 수당을 늘려 실질소득이 오르는 효과를 누렸다. 기본급을 낮추고 상여금과 수당으로 이를 보전하는 관행은 노사 합작품인 셈이다.

 실제로 올해 6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임금제도개선위원회가 100인 이상 사업장 978개소를 대상으로 임금 구성비율을 조사한 결과 전체 임금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57.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각종 수당과 상여금이었다. 심지어 기본급이 전체 임금의 22.2%밖에 안 되는 대기업도 있었고, 수당이 24개나 되는 업체도 있었다.

 임금제도개선위원인 성균관대 조준모(경영학) 교수는 “임금체계가 왜곡돼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임금은 적다”며 “이러다 보니 통상임금 산정 기준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에서 보듯 조그만 해석 차이만 나도 기업이나 근로자 중 어느 한쪽이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는 근속에 따라 인건비를 상승시켜 고령자의 조기 퇴직, 신규 채용 감소, 사내 하청 활성화와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임금제도개선위원회 조사 결과 1년 미만 생산직 초임 평균을 100으로 잡았을 때 10년차 생산직은 217.5, 30년차는 330.6에 달했다. 기업이 퇴직연령을 앞당기고, 사내하청을 통해 인건비를 절약하려는 이유다. 호봉제는 대·중소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도 확대시켰다. 능력이나 생산성과 상관없이 지급되다 보니 장시간 근로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은 대부분 성과·직무급을 채택하고 있다. 일한 만큼 보상을 확실하게 하고, 직무의 난이도와 숙련도에 따라 임금이 다르게 지급된다. 이러다 보니 생산성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 산정기준이 확대되면서 인건비 부담이 확 늘어나는 기업이 현실적으로 임금을 낮추기는 어렵다. 노조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려대 김동원(경영학) 교수는 “임금이 오르는 만큼 생산성이 뒷받침돼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형 성과급 임금체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관련기사
▶ 상여금 통상임금 포함 땐, 6000만원 받던 직원 연봉이…깜짝
▶ "임금의 명칭 아닌 성질 따라 판단"…휴가비 등은 불인정
▶ 3년치 못 받은 수당 청구 어떻게 해야?
▶ '이럴줄 알았다!'…재계, 고용부 향한 원망의 목소리 왜?
▶ 한국GM공장 철수 위기?…재계 '임금 폭탄' 비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