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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급분, 회사 망할 정도면 안 줘도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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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은 18일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 “통상임금과 관련한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에서 여전히 불씨를 남겨뒀다.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된다는 판결에 따라 그동안 받지 못한 수당을 임금채권의 소멸시효인 3년 전까지 소급해 돌려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재계는 소급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를 전제로 “34조원의 추가부담이 들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통상임금에 들어가야 할 부분 가운데 그동안 제외됐던 부분을 포함해 다시 계산한 수당, 퇴직금 등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 청구권이 제한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보통 임금협상을 할 때 노사는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인상률을 정한다. 기본급과 상여금, 수당 등 세부 항목의 지급 기준도 별도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상된 총액에 맞게 할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예전 임금협상 당시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면 노사가 기존의 높은 인상률에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수당들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아 실제 더 지급해야 할 임금 총액이 협상 당시 생각했던 규모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그랬다면 사측은 인상률 자체를 낮추거나 수당 등의 지급방식을 바꿔 총액이 크게 달라지지 않도록 조정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높은 인상률에 따른 수당 인상을 다 누려놓고, 이제 와서 인상률 자체는 놔두고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이 빠진 것만 문제 삼아 수당을 다시 계산하자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미지급 수당의 추가청구를 제한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핵심은 새 기준을 적용해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수당을 소급해 줄 경우 회사가 망할 정도의 재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추가적 재정부담이 기업 존립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추가 지급 요구를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쟁점은 어느 정도가 돼야 ‘회사 존립이 위태로운가’ 하는 기준이다. 대법원 윤성식 공보관은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회사 측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추가 부담을 꺼리는 회사 측은 “회사가 어렵다”는 주장을 할 것이고, 노조 측은 “그렇지 않다”며 반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은 회사 측의 호소를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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