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중소기업인 광명전기의 이재광(54) 대표는 18일 통상임금 판결을 접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 등이 있으면 기존 3년치를 소급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지만 이 문제를 놓고 노사 간 갈등이 생길 게 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단서 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노사 갈등으로 소급 적용을 할 수밖에 없게 되면 최대 13억~14억원이 필요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 회사는 생산직 근로자에 대해 짝수 달에 기본급의 100%씩을 상여금으로 지급해왔다.
한국GM에 통상임금 판결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소급까지 하면 한국GM은 당장 인건비로 1조원을 더 써야 한다. 매년 신차 개발에 투자하는 자금과 맞먹는 액수다. 게다가 지난 5일 GM본사는 한국GM이 주로 만들어서 수출하는 쉐보레의 유럽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약 18만6000대로 한국GM 연간 생산량의 23.3%에 달한다. 여기에 통상임금 부담까지 겹치자 회사 안팎에선 공장 철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GM은 최근 고임금 국가인 호주에서 공장 철수를 결정했다. 댄 앤커슨 GM 회장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돼야만 한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대법원 판결로 기업은 비상이 걸렸다. ‘비용 폭탄’이란 걱정까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판결에 따라 기업이 추가적으로 져야 할 비용 부담이 첫해 13조7509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둘째 해부터는 지금보다 연간 8조8663억원씩 노동 비용이 늘어난다. 이는 3년치 소급분을 뺀 추정액이다. 그러나 3년치 소급까지 감안하면 첫해 부담만 38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성명을 통해 “대법원이 기존 노사합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며 “투자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부담이 특히 큰 곳은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기업이다. 경총에 따르면 대기업의 추가 비용 부담은 9조343억원, 중소기업은 4조7166억원(소급 제외)이다. 광주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은 “우리 회사의 비용 증가는 물론이고 대기업에서 늘어난 비용까지 하청업체에 전가될 게 뻔하다”며 “중소기업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중소기업 기피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더 벌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될 경우 1인당 평균 수혜액은 대기업(300인 이상) 정규직은 최대 749만원, 대기업 비정규직은 38만원, 비정규직 전체로는 11만원에 불과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전체 근로자 중 12% 정도인 대기업 정규직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수혜의 절반 이상(53%)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도 부담이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소급분을 적용하지 않으면 약 2조원, 소급분을 적용하면 첫해에만 5조4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연구개발 비용이나 비상 자금을 인건비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처럼 노사합의에 따라 임금구조를 정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윤경·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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