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인간과 작품|동양과 서양을 이은 가교의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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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품세계>
양병종<경희대교수·영문학>
「펄·벅」여사는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으로 전세계에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사내지 미국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꽤 높이 평가되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대체로 커다란 문제성을 내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즐겨 다루는 작품의 주제가 세계문학으로서는 대수롭지 않게 평가되었던 동양을 그 무대로 하고있기 때문인것 같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늘 「휴머니즘」에 가득차 특별한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쓰여졌기때문에 누구든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 쉽사리 그 작품속에 휩쓸리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순수문학작품이 그 작품의 본질적인 높은 가치에비해 즐겨 읽힐수 없는 단점이 있다면, 비록 약간의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펄·벅」여사의 독특한 문학적 위치를 여기서 찾을수 있겠다.
특히 우리나라나 동양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미국인이면서도 동양적인 입장에서 세계문명속에서의 동양의 위치를 부각시키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데 큰 뜻을 찾을수 있으며 이와 관련되어 말년에 동양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재산을 투입했다는 점에서도 그 위치는 동양에서 더욱 크게 부각되어왔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뚜렷이 나타나는것은 「사랑」과 「생명」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이다. 누구든지 쉽게 느끼고 감동할수있는지 그의 작품은 이따금 눈물겨운 「페이더스」와 「센티멘털」한 감정으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대체로 다작이지만 그의 작품은「마거리트·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비견되어왔으며 그의 죽음이 주는 단 하나의특 별한 의미는 「캐더린·앤·프터」등 현존하는 몇 안되는..여류작가 가운데 커다란 기둥을 잃었다는것이다.

<인간적 면모>
중국의 한 농부를 소재로 한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과「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펄·벅」재단을 설립하여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도와오던 「펄·S·벅」여사가 6일 오전7시25분(현지시간) 「덴버」의 자댁에서 조용히 영면했다. 당년 80세.
지난해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담낭수술까지 받은바있는「펄·벅」여사는 지금까지 한국을배경으로한 소설 『한국서 온 두처녀』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등을 비롯하여 모두 84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대표작인『대지』로 1931년에는 「퓰리처」상을, 그리고 193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아 미국최초의 여류「노벨」문학상수상자가 되었다.
최초로 햇볕을 본「펄·벅」여사의 소설은 1929년에 발간된 『동풍·서풍』이었으며 이로부터 2년후에 『대지』가 발표되었다.
그의 대표작인 이『대지』는 30여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연극화·영화화되기도했다. 「폴·무니」가 주연한 영화 『대지』는 1937년 「아카데미」상까지 획득했다.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정신박약아인 딸 하나를 유족으로 남기고간 「펄·벅」여사는 1892년6월26일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출생, 17세까지 선교사로 일하던 양친과 함께 중국에서 살았다. 그녀자신도 말한적이 있지만 그가 성장기에보낸 중국생활17년은 그의 문학의 주제와 「스타일」에 결경적인 영향을 미치게되었다.
그후 얼마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그의 나이 22세되던 19l4년에는 자신이 선교사가되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l935년까지 교편생활을 했다.
지난해 「펄· 벅」여사는 다시한번 중국을 찾아가 보고자했으나 중공당국은 이를 거절했었다.
「펄·벅」여사는 거의 전생에를 통해 작품활동을 쉬지 않았으며 1년에 3편꼴로 많은 집필을하여 미국에서 수년동안 「베스트·셀러」작가로 군림했었지만 자신의 주장처럼 오히려「유럽」쪽에 더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었다.
1969년 「펄·벅」여사는 한 회견에서 『미국의 비평가들은 순수한 미국작가들만을 다루는데 익숙해 있는데 그들은 내가 순수한 미국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소설에대한 개념은 간결하고 직접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중국소설에 기초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섹스」문제에도 몰두할줄 아는 작가로서 『나는 「모럴리스트」가 아니며「섹스」는 나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다. 성문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재미있는 것』이라고 실토한적이있다.
「펄·벅」여사는 저작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1964년이후 주로 미군들이 저버린 불우한 「아시아」의 어린이들을 구호하기위해 사재1백만「달러」를 들여 「필·벅」재단을 설립했다.
「펄·벅」여사는 임종때까지 「버먼트」에서 공부하는 4명의 한국소녀들을 함께 데리고 살았으며 지금까지 「아시아」지역 5개국 어린이 2천명을 도와왔고 그중 9명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 「펄·벅」여사는 2번 결혼했다.
첫번째 남편은 남경대학에 선교사로 가 있던「존·로싱·벅」박사였으나 결혼생활 18년만인1935년에 이혼하고 출판업자인「리처드·월쉬」와 재혼했다. 그러나 2번째 남편과는 1960년에 사별했다.
「펄·벅」여사의 가족대변인은 고인의 유지에따라 장례식은 조용하게 가족장으로 거행하겠다고 말했다. 【댄버(버먼트) 6일AP동화】

<작품연보>
▲1929 『동풍서풍』(데뷔작)
▲1931 『대지』
▲1932 『아들들』
▲1934 『어머니』
▲1935 『분열된 집』
▲1938 『자랑스러운 마음』
▲1942 『용자』
▲1945 『결혼의 초상』
▲1949 『친척』
▲1951 『신의 인간』
▲1952 『숨은 꽃』
▲1953 『한국서 온 두 처녀』
▲1956 『황태후』
▲1958 『북경서 온 편지】
▲1963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1968 『새해』
▲1969 『양부인의 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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