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결국 인명피해 부른 철도노조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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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려했던 일이 결국 터졌다. 그제 오후 9시쯤 서울 지하철 4호선 정부 과천청사역에서 84세 김모 할머니가 전동차에 발이 끼여 숨졌다. 할머니는 1m 이상 끌려가다 스크린도어에 머리가 부딪쳤다. 열차 출입문 조작은 철도노조 파업으로 대체 투입된 한국교통대 1학년생이 했다고 한다.

 하필 파업 중에 터진 이 사고를 놓고 노사 양측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물론 김 할머니의 죽음을 파업과 직접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정이지만 파업 중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정규 직원이 출입문 조작을 담당했다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철도 파업을 보는 국민 불안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오늘로 파업은 9일째를 맞았다. 사상 최장이다. 대체인력 운용 차질 등 파업 장기화에 따른 피로도 극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지하철 1, 3, 4호선과 분당, 경의, 중앙선이 감축 운행 중이고 오늘부터는 KTX마저 운행이 줄어든다. 언제 또 다른 인명 피해, 대형 사고가 터질지 조마조마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번 철도노조 파업이 명백한 불법이며, 장기화할수록 돌이키기 어려운 만큼 당장 파업을 끝내라고 여러 차례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실체도 없는 민영화를 반대한다며 강경 투쟁 일변도다. 노조는 민영화가 되면 수익성 나쁜 철길이 폐지돼 산간 벽지 국민은 발이 묶인다고 주장한다. 그런 국민 불편을 막겠다는 게 파업 명분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불법 파업 때문에 이 추운 겨울 수많은 국민이 발 동동, 손 꽁꽁 철길에서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국민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는 철도노조가 산간 벽지 주민 불편은 걱정한다니 소도 웃을 일이다. 게다가 노조 측은 수서발 KTX 자회사가 설립되면 파업 때 대체인력 공급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지도 폈다. 뒤집어 보면 독점 공공기관인 철도가 파업할 때는 언제나 국민이 큰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 그야말로 국민 불편과 고통을 노린 의도적 파업이 아닌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 대가로 노조가 얻어낼 것은 뭔가. 자연승급분 포함 8.1%의 임금 인상이요, 철밥통과 방만 경영 뿐 아닌가.

 그런데도 따끔하게 질책해야 할 정치권은 거꾸로 가고 있다. 야당은 ‘강경 대응과 탄압 중단’ ‘수서발 KTX 면허발급 중단’ ‘사회적 협의기구 설치’ 등 철도노조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다. 집권당 공격과 정치 이슈화에만 급급해 국민 불편과 여론에는 눈을 감은 셈이다. 그러니 야당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철도는 노조의 밥그릇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노조는 파업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코레일과 정부도 결연히 대처해야 한다. 국민을 볼모로 한 불법 파업엔 엄정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이미 파업 장기화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만큼 파업 참가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손해도 철저히 배상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