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릉 쾅쾅’ … 엔진이 깨어나자 폭발적인 가속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918 스파이더는 그 이름에 맞춰 지난해 9월 18일 공식 데뷔했다. 전 세계에서 딱 918대만 파는 한정판이라는 뜻을 담기 위해서다. 이미 전체 물량의 절반 이상이 계약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국내 출시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지난해 2월 포르셰 918 스파이더의 테스트카를 처음으로 접한 적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 남부의 나르도 서킷에서 진행된 테스트카 동승 체험 행사에서다. 이때 모습을 드러낸 918 스파이더의 외모는 프랑켄슈타인 못지않게 험악했다. 덕지덕지 붙인 껍데기 사이로 금속 뼈대와 전선 뭉텅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데다 실내는 각종 계측 장비 때문에 발 놓을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공개 행사에서 이 차와 다시 만났다. 이 차의 완성된 외모를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날 동남아 각국의 쟁쟁한 부자들이 이 차를 보기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그러다가 이제야 드디어 운전대를 쥘 차례가 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세계 최고급 스포츠카를 탄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동차 전문기자라고 한들 이처럼 비싸고 강력한 차를 시승할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918 스파이더를 몰고 있는 필자. 움직임은 강력했지만 정작 운전은 까다롭지 않았다.

918대만 한정 판매 … 절반 이상 팔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다가 오후가 되면서 거짓말처럼 날이 화창하게 개자 비로소 시승석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 준비된 시승차는 총 5대. 일련번호가 ‘○○○’으로 각인된 시제작차다. 포르셰 제품홍보 담당 토마스 해그는 “성능 시험과 인증, 충돌 테스트, 시승회 등을 위해 47대의 918 스파이더를 추가로 제작했다”고 귀띔했다.

918 스파이더는 도로 위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차체는 마치 땅바닥에 납작하게 들러붙을 기세다. 높이가 채 1.2m가 안 된다. 길이는 아반떼보다 짧지만 너비는 에쿠스보다 넓다.

무거운 부품은 차체 한복판으로 몰아놓은 게 특징. 예컨대 엔진(사진1)과 배터리 팩을 좌석 바로 뒤에 배치했다. 무게 배분을 위해서다. 머플러(사진2)는 뜨거운 배기가스를 빨리 빼내기 위해 엔진 위에 얹었다. 그래서 파이프가 등판 위에 비스듬히 솟아오른 게 눈길을 끌었다.

쇠보다 단단한 플라스틱 차체
차체 골격(사진3)과 껍질은 카본섬유강화플라스틱(CFRP)으로 만들었다. 쇠보다 단단하되 훨씬 가볍다. 외부는 페인트로 겹겹이 칠해 소재를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다. 그러나 실내엔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히 엮은 고유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각종 스위치는 터치 방식이다(사진4). 그래서 표면이 오톨도톨 굴곡 없이 매끈하다. 첨단 이미지가 물씬하다.

드디어 출발이다. 키를 꽂고 비틀어도 엔진은 잠에서 깨지 않는다. ‘찌잉~’, 어디선가 전원 들어오는 소리만 났다. 브레이크를 떼고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몸이 천천히 시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엔진은 감감무소식. 실내엔 ‘위잉~’거리는 모터음과 바퀴에서 튄 돌 가루가 휠 하우스 안쪽을 때리는 소리뿐이었다. 속도는 벌써 시속 100㎞를 넘어섰다. 굽이굽이 코너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우르릉 쾅쾅’ 폭발음과 함께 엔진이 그제야 깨어났다. 엔진의 존재를 느끼는 그 순간, 내 머린 곧장 뒤로 꺾였다. 명치가 뻐근할 만큼이나 빠른데도 그 기세에 비해 차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속도계를 보면 내 착각일 뿐이었다. 가속과 감속, 재가속의 경계는 명확했다. 그만큼 힘을 즉각 쏟아냈다가 일순 거둬 갔다.

상식을 뛰어넘는 괴력 때문에 운전은 마찰과 저항이 배제된 레이싱 게임과 비슷했다. 물론 가상현실이 아닌 탓에 몸이 고달팠다. 코너를 돌 때 원심력은 차의 기울기가 아닌, 내 엉덩이 짓눌린 정도로 가늠할 수 있었다.

승차감은 예상대로 단단했다. 운전대를 쥔 손과 시트에 밀착된 몸을 통해 노면의 미세한 균열 하나하나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선도차를 따라 4㎞짜리 트랙을 6바퀴 도는 데 10여 분 정도 걸렸다. 이날 트랙이 길지 않은 탓에 최고 시속 345㎞를 경험할 기회는 없었다. 260㎞까지 밟아봤지만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잠재력의 변죽만 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도됐기 때문이다. 가속 시간과 최고 속도, 연비, 가격에 이르기까지 918 스파이더를 이룬 요소는 자동차에서 ‘과잉’이란 표현으로 점철될 만했다. 구성은 난해했지만 결론은 명쾌했다. 최신 기술을 망라한 가장 비싸고 빠른 포르셰. 그 상징성을 소유하기 위해 12억원을 내놓을 부자가 세상에 어디 918명뿐이랴. 1조원 가까운 매출이 걸린 프로젝트인데도 포르셰가 여유만만인 이유다.
 
‘두 개의 심장’을 지닌 하이브리드카
918 스파이더는 소위 ‘수퍼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스포츠카를 일컫는 말이다. 심장은 V8 4.6L 엔진과 전기 모터 두 개. 서로 다른 복수의 동력원을 쓰는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하이브리드 차라면 연비에 ‘올인’한 소형차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포르셰가 여기에 눈독 들이는 데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성능이다. 기존 내연기관만으론 더 이상 극적인 성능 개선이 어려워졌다. 자동차 관련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탓이다. 포르셰의 간판 스포츠카로 엔진만을 쓰는 911이 성능을 더 이상 획기적으로 올리지 못하는 게 상징적 예다. 각 세대별로 시속 100㎞ 순간 가속 시간의 차이는 이제 0.1초 단위까지 줄어들었다.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데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엔진을 마냥 키울 수도 없다. 연비와 무게 때문이다. 이 같은 고민의 해법이 전기 모터다. 엔진은 회전 수가 한껏 치솟아야 힘이 제대로 무르익는다.

반면 전기모터는 전원이 들어오는 순간 최대치의 힘을 쥐어짠다. 그래서 가속이 보다 민첩하고 힘차다. 918 스파이더는 전기모터만으로도 16~31㎞의 거리를 시속 150㎞까지 너끈히 달릴 수 있다. 반대로 고속에선 전기모터의 ‘독기’가 돌연 누그러진다. 이땐 엔진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따라서 기존 엔진을 그대로 쓰거나, 심지어 줄이고도 더 나은 성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단점을 지우고 장점을 살리는 시너지 효과. 그게 차량급(級)과 장르에 상관없이 하이브리드 차량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태생적 장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연비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다. 유럽 기준 제원에 따르면 918 스파이더의 항목별 수치는 각각 32.2~33.3㎞/L, 70~72g/㎞. 국산 경차 기아 모닝이 15.2~17.0㎞/L, 98~112g/㎞인 것과 비교하면 수퍼카에선 경이롭기까지 한 기록이다. 바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곁들였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발렌시아(스페인)= 김기범 객원기자· 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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