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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지시등 미사용 단속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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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영국은 유럽 자전거 판매량 2위를 기록하는 나라답게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안전모 착용은 기본이고, 자동차처럼 방향지시등까지 작동했다. 좌회전하려면 왼쪽 손을, 우회전하려면 오른쪽 손을 들어 표시했다. 도로는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와 같이 조화롭고 평화로웠다.

 30여 년이나 지난 오래된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건 여전히 기초질서 준수에 소홀한 우리 교통문화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소위 ‘깜빡이’로 불리는 방향지시등은 도로 이용자의 당연한 의무이며, 안전운행을 위한 필수 요소다. 하지만 실제 도로이용자의 점등률은 매우 낮다. 우리 공단에서 발표한 ‘교통문화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58.7%에 그쳤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010년 62.1%를 기록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방향지시등으로 차선 변경 신호를 보내는 차량을 허용치 않으려고 더 속도를 높이는 운전자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더욱 낮아질 것이고 사고 발생 확률도 급증할 것이다. 실제로 경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방향지시등 미사용을 포함한 진로 변경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는 한 해 평균 1만1199건이고, 사상자는 1만8000여 명에 달한다.

 이처럼 점등률이 낮은 것은 도로 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을 통한 운전자 의식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함께, 교통문화 개선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법 집행도 요구된다. 경찰은 방향지시등 미사용을 꼬리물기, 끼어들기, 오토바이 인도주행과 함께 4대 교통질서사범으로 규정하고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교통법규 준수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방향지시등의 올바른 사용은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