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상품공급점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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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상품공급점’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언론 보도에서 봤습니다. 상품공급점은 어떤 점포인가요. 요즘엔 ‘상품취급점’이라는 스티커를 단 수퍼마켓도 보이던데 무슨 차이가 있나요.

A 틴틴 여러분은 엄마와 장을 보러 갈 때 주로 어디에 가나요? 아마 이마트나 롯데마트·홈플러스 같은 대형 유통매장을 가는 경우가 많으실 테지요.

 유통업체들은 전국 주요 지역에 이러한 대형 할인매장을 열고 영업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 매장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좀 더 작은 상권에는 기업형수퍼마켓이라 불리는 ‘SSM(Super Supermarket)’을 열고 물건을 판매합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롯데슈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같은 곳이 바로 SSM입니다. 이마트처럼 크지는 않지만 동네 수퍼보다는 훨씬 큰 규모여서 ‘수퍼 수퍼마켓’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현재 이마트 에브리데이 226개, 롯데슈퍼 313개(하모니마트 278개 포함) 등 600여 곳이 영업하고 있지요.

대형마트와 같은 유니폼도 입어

 이들 SSM은 다른 작은 수퍼마켓에 물건을 공급하는 일도 합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한편 다른 작은 가게의 도매상 역할도 하는 것이지요. SSM이 도매상 역할을 하는 이유는 대량으로 물건을 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꺼번에 많이 사오면 아무래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지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소시지를 예로 들어볼까요. 어떤 도매업자가 소시지 100개를 개당 800원씩 주고 사와서 1000원에 판다고 칩시다. 그런데 상품을 공급할 곳이 많아져서 100개가 아니라 1000개를 사올 수 있으면 개당 700원에 사와서 900원에 팔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를 유통업계에서는 ‘구매력(Buying Power)’이라고 합니다. 대규모 거래일수록 유통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구매력이 세지면 원가 경쟁력이 좋아지는 겁니다.

 동네 수퍼들은 거래처를 이런 구매력 있는 SSM들로 바꾸고 좋은 물건을 싼값에 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지요. 소비자들이나 이웃 수퍼마켓에서 ‘어떻게 소시지 가격을 10%나 낮출 수 있나, 하자 있는 물건 아니냐’는 눈총을 받게 된 겁니다. 그러자 이들은 SSM 측에 “간판에 어디에서 물건을 공급받는지 표시할 수 있게 해달라” “우리도 SSM 직원들이 입는 것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겠다”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을 만한 물건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요.

 지난해 3월부터 SSM에서 물건을 공급받는 수퍼마켓들이 실제 행동에 나섰습니다. ‘OO수퍼’라는 기존의 간판 바로 옆에 ‘OO마트 상품공급점’이라는 간판을 하나 더 단 것이지요. 그러니까 상품공급점이란 용어는 정확히는 ‘공급을 하는’ 업체가 아니라 ‘공급을 받는’ 동네 수퍼에 붙어 있는 겁니다. 이들은 본점과 같은 유니폼도 맞춰 입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사가 너무 잘되기 시작한 거지요. ‘OO마트 상품공급점’이라는 간판을 단 수퍼들은 전보다 매출이 20~30%나 급증했어요. 인근 다른 수퍼마켓의 매출은 당연히 줄어들었지요. 다른 수퍼들은 “우리도 상품공급처를 바꿔야 하나”라는 고민을 안 할 수가 없게 된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동네 수퍼들이 SSM으로 잇따라 상품공급처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기존에 물건을 떼주는 일을 하던 중소 도매상과 대리점들은 일감을 잃게 되겠지요.

싼값 강점, 매출 급증 … 주변 가게서 반발

 이런 상황을 좀 어려운 말로 ‘시장 논리’와 ‘상생 논리’가 부딪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시장 논리란 모든 경제 주체, 그러니까 개인이든 가계든 기업이든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가장 이득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다는 논리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가까운 수퍼에서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합리적인 소비행위는 없지요. SSM 상품공급점 주인 입장에서도 다른 가게보다 더 신선한 물건을 싼값에 판다면 손님이 늘고 소득도 많아질 테니 자신의 입장에서는 최적의 경제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시장 논리’에서 소외되는 층을 만들 수밖에 없어요. 모든 중소 수퍼마켓이 대형할인점으로부터 물건을 공급받겠다고 나서면 대리점이나 도매상을 업으로 삼는 이들과 그 가족들은 생계가 곤란해지게 마련이지요. 특히나 이들의 일감을 빼앗는 주체가 큰돈을 버는 대형 유통업체라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상생이 화두인 요즘 사회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지난 10월 이마트에브리데이·롯데슈퍼 등 대기업 측과 전국상인연합회·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등 상인단체가 참여한 유통산업연합회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상품공급점을 어떻게 개선할지 머리를 맞댄 것이지요. 이 자리에서 양쪽은 몇 가지 의미 있는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대형마트 로고 간판 철거 등 상생안 합의

 우선 개인 중소형 수퍼들은 앞으로 기존 대형업체 상호와 로고가 포함된 ‘○○마트 상품공급점’이란 간판을 계약기간이 끝나면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점포 입구에 ‘○○마트 상품취급점’이라고 명시된 지름 50㎝ 이하의 스티커를 조그맣게 부착하기로 했습니다. ‘상품공급점’에서 ‘상품취급점’으로 표기를 바꾸기로 한 겁니다. 또 대형 유통업체 상호가 포함된 전단 배포, 유니폼 착용, 상품권·포인트 공유 등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도매업체 간의 상생 방안도 제시됐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의 구매력을 중소 유통업체와 연결시키기 위해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에, 롯데슈퍼는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 물건을 공급하고, 이들 단체가 다시 중소 수퍼에 물건을 나눠 주기로 했습니다. 시장 논리와 상생 논리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랍니다. 대형마트의 ‘브랜드 파워’는 없어졌지만, 가격 경쟁력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대형 유통업체에서 물건을 공급받는 ‘상품취급점’과 영세한 지역 소매업자들 간의 가격 경쟁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요. 일부 시민단체가 “OO마트 상품취급점도 SSM처럼 의무휴업 같은 규제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상품취급점들은 “우리도 중소상인인데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의무휴업을 적용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품취급점은 단순히 유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사회 구성원들 전체의 행복지수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하는 철학의 문제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틴틴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갈 때면 간판의 변화, 상품이 오가는 과정 등을 관심 있게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는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이 함축돼 들어 있답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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