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임하는 국립국악원장 성경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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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립국악원장직을 정년으로 물러나는 성경린씨의 602생애는 국악 그 자체로 엮어졌다. 『이제 국악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동안 지켜본 국악계 반세기의 이면사를 쓸까한다』고 차분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생활의 전부였던 국악과의 어쩔 수 없는 간격에 새삼 축축한 감상을 담은 듯한 목소리이다.
1925년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에 입학, 가야금을 배우면서부터 국악과 인연을 맺어 온 그는 국악원의 산파역이 돼 지난 11년간 원장직을 맡아 옴으로써 실질적인 국악계이 총수격이었다. 국악원이 우리나라 국악계를 대표하는 국가 기구일 뿐 아니라 성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국악 육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온 것이다.
국악계의 현역 원로인 김천흥씨는 이 양성소의 1년 선배, 이주환(피리·성악), 김영윤(가야금), 봉해룡(젓대)씨 등은 동기생들이다. 성원장과 함께 모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돼 있다.
전시 수도 부산에서 개원한 국악원의 멤버는 대부분이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 출신 국악인이었다. 이들은 당시 방송의 음악 프로를 메워 나가고 있었다.
『55년에는 국악사 양성소가 설립되었으며 서울대와 한양대 음대에는 국악과가 생겨 이제 후계자 양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요. 다만 일반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얼마만큼 국악을 보급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로 남아 있읍니다.』
국악의 특수성이자 자랑인 악률을 배우기 쉽도록 양악의 12평균율로 고쳐 놓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북한에서는 이미 전통적인 국악이 평균율의 도입으로 변질되어 순수한 형태가 없어진 것으로 안다면서 국악의 성격을 그대로 고수하고 발전시켜야 진정한 한국음악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남산동쪽 기슭에 건축중인 국립극장이 내년 봄 개관되면 국립국악원의 전용연주실이 생기고 활발한 공연활동을 통해 일반의 국악에 대한 관심도 고조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27일부터 2개월간 그는 국악예술단을 인솔하고 미주를 순회 공연하게 되는데 이것도 국내 국전보급의 한 전략. 붐을 밖에서부터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그는 국악원장직을 물러나지만 이번에 새로 발족한 국악고등학교를 맡게됐다. 원장 후임에는 현악사장 김기수씨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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