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보다 실리 먼저' 중국, 반일시위 자제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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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중국이 대일 외교에서 양면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인터넷과 민간 단체가 벌이는 반일 운동에 대해선 재갈을 물리면서, 정부는 일본 측에 역사교과서 왜곡과 관련한 외교 교섭을 요구키로 했다. 일본과의 정면 마찰을 피하되 '할 말은 한다'는 전략이다. 지금 당장은 역사 문제보다 일본의 자본.기술을 얻어내는 게 중국의 국익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반일 논조를 누그러뜨려라"=중국 언론 매체들은 5일 "반일 운동이 폭력으로 치달으면 안 된다"고 일제히 경고하고 나섰다. 홍콩의 명보(明報)는 "당 중앙 선전부가 언론 매체에 통지문을 보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보도할 때 그 수준을 낮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등에 맞서 벌어지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해선 보도 중단 지침을 내렸다. 지난 주말부터 선전.청두(成都)와 동북 지방에서 일본제품 불매 운동, 가두 시위, 일본계 상점 공격 등이 발생하자 냉각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인터넷 매체의 간판 격인 신랑왕(新浪網)은 대대적으로 전개했던 반일 서명운동의 배너를 네티즌이 찾기 힘든 자리로 옮기고 크기도 축소했다. 관영 인터넷 매체인 신화왕(新華網)은 아예 반일 운동과 관련한 검색어를 봉쇄했다. '반대 일본 상임이사국' 등으론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없다.

◆"과거사 문제는 3대 난제 중 하나"=중국 외교부는 5일 주중 일본 대사관에 "역사교과서 문제를 정식 교섭하자"고 요구했다. 중국은 그동안 "일본이 역사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라"는 입장을 지켜왔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야오원리(姚文禮) 일본연구소 대외관계연구실 주임은 "중.일 관계의 3대 장애물은 역사.대만.영토 분쟁"이라며 "이들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 전략=언론 통제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하나는 일본 측의 외교적인 항의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4일 "중국 대륙에 진출한 일본 기업.교민의 안전을 보장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외교 채널을 통해 반일 운동을 방치하는 데 대해 항의도 했다. 중국으로선 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을 외면할 수 없다. 반일 운동이 과격하게 흐를 경우 외자 유치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둘째는 중국 대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들어선 점이다. 6월 4일 천안문(天安門) 사태 16주년을 맞아 어떤 명분의 집단 행동이든 뿌리뽑겠다는 계산이다. 중국 지도부도 중.일 관계를 망치지 않겠다는 자세가 역력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강도 높게 일본 측을 비난했던 적은 거의 없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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