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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다윈이 몰랐던 것 … 진화의 원동력은 협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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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폴 고갱(1848~1903)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갔는가’(1897)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중앙포토]

지구의 정복자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416쪽, 2만2000원

“살짝 던져 놓을 게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져야 할 책이다. 정말 유감이다.”

 『이기적 유전자』(1976)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쓴 서평을 읽고 이 책을 집어들 독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표지를 보고는 눈을 의심할지 모른다. 저자가 에드워드 윌슨이다. 요즘 너나없이 인용하는 ‘통섭(consilience·統攝)’의 주창자다. 1975년 출간된 그의 『사회생물학』을 읽고 훗날 행동생태학자가 된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이 문제작은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화폭에 적힌 실존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그는 이 화두를 다음 같이 번역했다. ‘고도의 사회생활은 왜 존재하고, 그토록 드물게 출현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진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살짝 식상하다. 이타성의 진화야말로 40년 묵은 단골메뉴이기 때문이다. 자식도 낳지 않고 자매를 평생 돌보는 일개미의 이타적 행동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나. 1960년대에 영국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이 ‘포괄 적합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부모·자녀는 물론 형제·친척 등 유전적으로 가까운 혈연간에 협동한다는 이론· 혈연선택 이론)을 제시하기 전까지 만해도, 곤충세계의 ‘테레사 수녀들’은 과거 100여 년간 ‘적자생존’만을 믿어왔던 다윈의 후예를 고문했던 문제였다.

 윌슨은 해밀턴을 사실상 학계에 데뷔시켜준 장본인이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 이론을 대중에게 쉽고 명확하게 소개한 공로로 스타 과학자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 이론의 강력한 옹호자가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 “포괄 적합도 이론의 토대는 무너져 왔으며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책 요충지 곳곳에 매립된 그의 폭탄성 발언으로 지금 진화학계는 패닉 상태다. 윌슨은 후배 학자로부터 집단 따돌림마저 당하는 실정이다. 이 변심의 이유가 궁금해 최근 그의 하버드대 연구실을 찾아갔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만난 에드워드 윌슨 교수(오른쪽)와 장대익 교수. 인터뷰 전문은 중앙일보 홈페이지(joongang.co.kr)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장대익 교수]

 -당신은 개미와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유를 설명한다면.

 “개미는 수, 무게, 환경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무척추동물계의 지존으로서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를 진화시켰다. 그 분업 중에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이 포함돼 있어서 ‘진사회성(Eusociality·종족보존, 혹은 자손양육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진짜’ 사회성)’ 동물이라 불린다. 반면 인간은 개미처럼 번식을 위한 분업을 하지 않지만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성을 진화시켰으며 유일하게 문명을 일으킨 종이다.”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진화시킨 원동력은 혈연(유전자)인가, 집단인가. 혈연선택 이론의 대장이었던 당신이 어떻게 이런 변심을 할 수 있는가.

 “그동안 그것을 얼마나 옹호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옳으냐 그르냐가 더 중요하다. 곤충의 복잡다단한 생태를 더 깊이 연구하면서 혈연선택보다 생태적 요인이 진사회성의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윌슨은 “유전자를 얼마나 공유했느냐보다 집(nest·보금자리)을 공유했느냐가 더 중요한 요인이다. 또 다른 정복자인 인간의 경우 사회성 진화의 원동력은 확실히 유전자나 개체가 아닌 집단선택이다. 인류의 진화사에서 집단간 충돌은 끊이질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족주의·명예심·의무감 등이 이기심을 억누르게끔 진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미든 인간이든 혈연선택만으로는 그들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수준에서 작용했던 선택압(壓)을 동시에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윌슨은 “인간의 본성은 그런 다수준 선택의 산물”이라며 “문화·도덕·종교· 예술이 그 예이다. 이전에 난 틀렸다”고 했다.

 사실 3년 전쯤 윌슨은 하버드대 수리생물학자 마틴 노왁(M Nowak) 등과 함께 이 책의 이론적 근간이 된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다. 거기서 그들은 포괄 적합도 이론이 기껏해야 자신들이 주장하는 ‘다수준 선택 이론’(자연선택은 개인을 넘어 집단 수준에서도 일어난다는 이론)의 특수한 경우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에 주류 진화학자들 중 137인이 반박 논문에 서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그는 이런 반응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옳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왜 그들은 포괄 적합도 이론을 패러다임처럼 고수할까.

 “무지! 그들이 공통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참고문헌이 있는데 거기서 포괄 적합도는 전혀 측정된 바 없다. 우리는 지금 진화생물학의 역사에서 매우 드문 사건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패러다임 전이 단계다. 표준적인 자연선택 이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

 윌슨은 진사회성의 진화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들이 집을 짓고 그것을 중심으로 협동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침팬지와 우리의 중요한 차이는 그들에게는 함께 모여 둘러앉을 모닥불(야영지)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방어 가능한 안전한 보금자리에 집단이 집결함으로써 생긴 결속력은 인간의 사회성 진화에 결정적 한방이었다”며 “혈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고 말했다.

 -도킨스의 혹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고개를 가로 저으며) 도킨스는 내 이론을 평가할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나와 그 사이에 충돌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런 건 없다. 나는 과학자들을 설득하는 중이고, 그는 대중들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80세가 훌쩍 넘은 그는 『통섭』을 비롯한 이전 저작들처럼 이번에도 도발을 감행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주 목표가 이번에는 외부(인문사회학계)가 아닌 내부(진화학계)라는 점일 것이다.

 “개미와 인간을 정복자로 진화시킨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집단의 힘”이라는 그의 메시지에 동의할 수 있을까.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현상을 유전자나 개체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현재의 지배 패러다임에서 이것은 분명 큰 도전이다. 과연 그는 코페르니쿠스가 될 수 있을까. 내 귀에는 아직도 확신에 찬 어조로 ‘과학혁명’을 장담하던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두고 볼 일이다. ▶ 『지구의 정복자』에드워드 윌슨 인터뷰 전문 보기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진화학과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현재 안식년을 맞아 미국 터프츠대에서 연구 중이다. 『다윈의 식탁』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등을 썼다. 윌슨의 『통섭』을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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