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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꺼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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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생각의 궤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난주 옮김, 한길사
420쪽, 1만6000원

그 때까지 로마는 그저 케케묵은 역사책의 귀퉁이에 묻혀 있었다. 고작해야 ‘로마는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거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에 등장하는 정도였다.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76)가 『로마인 이야기』를 내자 로마는 비로소 역사에서 튀어나와 눈 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10월의 로마’가 아니었다면 그의 이야기 주제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가을이 나를 역사작가로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로마를 찾은 날이 ‘진짜 태어난 날’이란다. 『생각의 궤적』은 그의 에세이 모음집으로, 1975년부터 2012년까지 각종 매체에 실린 다양한 글을 엮었다.

 여기서는 책에서 만난 정제·절제된 작가의 모습이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섬세한 묘사, 예리한 통찰은 ‘읽는 맛’을 준다. 반면 거침없는 솔직함은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다. 아르마니를 입고, 몽블랑 만년필을 쓰며, 탐미적인 식사와 보석에 대한 욕구까지 그대로 드러낸다. “어차피 사는 인생, 풍요로운 것보다 더 좋은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영화감독 펠리니·비스콘티·구로자와와 교류한 추억에선 은근히 자신도 동일한 반열에 있음을 과시하는 듯하다. 집필 시기가 아니라 주제별로 분류하다 보니, 그의 생각이 날 것에서 점차 숙성되어 가는 과정까지 맛보려면 좀더 집중력이 필요하다.

 대표작인 『로마인 이야기』가 사실(史實)에 대한 엄밀성 논란을 불렀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듯하다. 자신은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작가’일 뿐이라고 짐짓 겸손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진실을 추구할 수 없을 때, 이상하지 않은 거짓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항변한다. 그래서 오스만투르크의 메메드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주시오”라 했다는 사료(史料)를 무시하고, “그 도시를 주시오”로 묘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우경화 기미, 제국주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숨길 수 없다. 반도인 로마와 섬나라 일본의 공통점으로 ‘대륙적 기질’을 내세운다. 현대의 로마가 제정(帝政)이 아니라 공화정을 추켜세우는 것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열등감이 아닐까 분석한다.

 그의 이름 나나미(七生)는 7월 7일생이어서 붙여졌다. 숫자 ‘7’에 호의적인 이유이다. 로마도 7개의 언덕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자신과 운명적인 만남이 예정됐다고 여길 정도이니까. 내년이면 77세인데, 그의 저작 인생에도 ‘위대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점쳐본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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