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마을|참사의 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꺼번에 17명의 어린 목숨을 잃어버린 하천1리 29가구 1백70여 주민들은 어처구니없는 참변에 울음바다를 이뤘다.
불은 사씨집 천장과 벽의 일부 등을 태워 1만원 안쪽의 작은 피해를 냈지만 한꺼번에 두 아이를 잃은 집이 5가구가 되는 등 너무나 큰 비극을 남겼다.
아들 조철호군(4)과 딸 순호양(7·상천국민교 1년) 을 잃어버린 사정애씨(29)는 4년 전에 남편 조영호씨를 여의고 채소장사를 하면서 3남매를 키워 왔다. 사씨는 한 달쯤 전에 초가에 「슬레이트」를 얹느라고 5만여원의 빚까지 져 남의 집 품팔이도 하고 약초를 캐다 팔기도 했다.
사씨는 이날도 낮 12시쯤 서울에 가서 약초 2백원 어치를 팔고 돌아가 남궁씨집 잔치 음식준비를 도왔다.
사씨는 자기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얻어 먹인 뒤 집으로 돌려보내고 계속 부엌일을 거들었다.
『불이야!』 소리를 듣고 사씨가 뛰어나갔을 때는 이미 두 아이가 불길에 싸인 뒤.
사씨는 마당에서 뒹구르며 『철호야』하고 울부짖었다.
이병삼씨(32)는 맏딸 미자양(11), 둘째딸 미옥양(6) 맏아들 춘기군(9) 등 3남매를 모두 잃고 『나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면서 방바닥을 쳤다. 이씨는 이날 상오 11시쯤 춘기군이 병원에서 죽자 집으로 돌아갔으나 하오 6시가 지나 두 딸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울음마저 잊어버리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웃 이병무씨(32)는 두 딸 근희양(11·상천국 4년)과 태식양(8·상천국 1년)을 잃었고 김영주씨(60)도 2남 광필군(11·상천국 5년)과 3녀 광연양(8·상천국 2년)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이 마을 어린이들 가운데는 「태식」 「광연」 「중대」 등 사내이름을 붙인 여자 어린이가 많아 성별을 가리는데 한때 혼란, 「태식」양의 경우 아버지 이병무씨가 딸만 여섯을 낳아 아들을 바라고 지은 이름이라고.
2일 아버지의 회갑 날을 맞은 남궁길씨(32)집은 이미 장만해 논 음식을 버릴 수 없어 지난밤의 슬픔을 참으며 잔치를 치렀다.
지난밤 잔치준비로 이웃 어린이들과 함께 중상을 입은 3남 녹군(8)을 「메디컬·센터」에 입원시켜 놓고 돌아 온 남궁씨는 잔치손님을 말없이 받았고 초대받은 30여 명의 손님들도 한결같이 어린이들의 참사를 마음 아픈 듯 위로했다. <김재혁·원대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