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난산 끝의 큰 수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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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은연중 금년은 미술의 해처럼 각광받는다. 이중섭 전, 이인성 전에 이어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으로 회고전의 「붐」은 절정을 이루는 느낌이다.
27일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막돼 한달 동안 공개되는 이 역사적인 대회고전은 개화 이후의 60년 미술사를 실제 작품으로써 총 정리해 보는 첫 기획전이란 점에서 획기적인 행사이다.
벌써 있어야 할 일임에도 막상 착안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이 선뜻 성취해 낸 것은 커다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미술관의 턱없는 인원을 가지고 착수한 것부터가 커다란 용기였고 개관할 만큼 작품을 모아들였음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미술관이 이 획기적인 대전을 마련했다고 해서 그 기능이 제 궤도를 되찾은 것은 아니다.
유명무실하게 간판만 걸어 놓았던 지난 수년간에 비하여 대견한 것일 뿐, 이를 추진해 온 과정이나 전람회의 결과에는 억지투성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본연의 구실을 다하기에는 지금 너무도 엉성한 직제요 예산이다. 관장·사무관·서무담당관·운영담당관이 각각 1명씩으로 일반직이 모두 4명. 그밖에 고용직 수위가 4명이다. 여기에 전문직으로서의 학예연구관이 한 사람도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반직 관리들은 애당초 현대미술에 관하여 어떤 소양을 갖고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그들은 정류장처럼 잠시 머무르다가 어서 떠나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러한 미술관이므로 수장인들이 소중한 작품을 일시나마 그들에게 맡기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운반도중 혹은 전시 중에 사소한 실수가 있으면 그 피해는 곧 작품자체가 받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출품치 않은 실례가 더러 있고 또 개개 사가들 역시 소홀하게 여겨왔음이 출품결과로서 입증된다.
예산 면에서 보면 더욱 한심하다. 금년의 총예산이 2천5백만원. 이 중에서 덕수궁으로의 청사 이전비 6백만원과 작품구입비 8백만원을 제하면 고작 인건비에 불과하다.
이번 60년 전 개최예산에 대해서는 아예 함구무언이다. 미대 학생작품전이 5백만원, 무슨 「디자인」전에 수천만원이 소용된 것 등에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된다는 얘기다. 아마 2∼3백만원 안팎으로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관에 소장작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작년에 구입한 몇 점과 기증작품 몇 점이 소장품의 전부이다. 이번 전시한 근 4백 점이 다 외부로부터 빌려 온 것들이다.
또한 미술관에는 전날의 작품「리스트」도 없다. 하물며 작품소재야 더욱 깜깜이다. 아는 사람도 문서도 없는 신접살림인 것이다.
결국 이 대대적인 전람회는 추진위원회 몇 사람의 도움으로 이만큼이나마 열게 됐다는 결론이다. 이경성·최순우·이대원·이구열씨 등은 한동안 매달려 살다시피 했고 김인승·김경승·이유태·김충현씨 등 추진위원들도 자진해 좋은 전람회가 되도록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작품은 개관전야까지 새로 반입하는 북새를 피워야 했고 「캐털로그」에는 「미스」 투성이를 면할 수 없었다. 그저 벽면을 다 채워 놓았으니 대견한 것일까.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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