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달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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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고교 입시 전형에서부터 채택키로 한 체력장 제도는 벌써부터 몇가지 문젯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5월31일 문교부는 종래의 체능 검사 대신, 새로 8개 종목의 체력 검사를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체력장 제도를 채택키로 결정했었다. 이같은 제도 변경의 발표가 있자 내년도 고교 진학 예정자인 중3 학생들에게는 물론, 국민학교 고급 학년 아동들에 대해서까지도 즉각 이 새 제도에 대비하는 일종의 과열 「수험 준비」가 강요됨으로써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새 체력장 제도 실시에 대비해서 각 학교는 현재 앞을 다투다시피 새 기준에 의한 달리기·뛰기·던지기·턱걸이 등 전 검정 종목에 걸친 체능 향상 지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어느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는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수험 준비 교육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이들을 이중으로 괴롭히고, 마침내는 체력의 한계를 넘는 무리까지 자행하고야 만 것이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새 체력장 제도에서 요구하고 있는 「오래달리기」 종목이다. 지구주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이 종목은 남자 중학생에자는 1천m를 3분9초∼4분43초, 여자 중학생에게는 8백m를 3분13초∼4분47초 이내에 달려야 급내에 들어가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러한 거리의 달리기 종목이 이 나이 또래 중학생들의 평균 체력으로 보아 과연 무리 없는 검정 조목이 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여학생 가운데는 이미 1명의 희생자와 21명의 졸도자가 났다하거니와, 굳이 이같은 극단적인 실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거리를 단숨에 달리도록 하는 것은 육상 선수 아닌 일반 중학생에게는 처음부터 무리한 기준이라는 것이 인국 일본에서도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나라 중학생들은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과외 공부에 시달려, 그 평균 체력 자체가 전반적으로 허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같은 지구주력을 갑작스럽게 요구한다는 것은 자칫 위험을 자초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전기한바와 같은 불상사를 빚은 책임의 일단은 학교 당국자 및 체육 담당 지도 교사의 잘못에도 있다.
문교부가 체력장 제도 실시에 즈음해서 보낸 『일반적 주의사항 제7』에는 검사에 있어서는 피검자의 건강 상태에 각별한 주의를 하도록 지시하고, 특히 『질병의 유무를 확인할 것과 병후자, 또는 현재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는 자, 심장질환자, 각기 증세가 있는 자 등은 검사에서 제외할 것』까지도 명시하고 있는데 학교 당국이나 체육 지도 교사들이 이같은 당연한 일반적 주의사항조차 지키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체력장 제도 실시의 근본 목적은 국민 체력의 전반적 향상에 기여코자 하는데 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본난은 이 제도를 입시 전형에 직결시킴으로써 빚어질 몇가지 우려할만한 현상을 미리 예견하고 이미 보고까지 한바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 이기기 위한 과열 과외 공부의 폐단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제도의 입시 연결은 필연코 또 하나의 과중한 체력 소모를 강요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특히 국민학교 과정부터서의 이 제도의 일률적 실시 강요는 국민의 사고·행동 양식을 자칫 규격화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한 제도의 채택과 변경을 학년 도중에 단행함으로써 갖가지 부작용을 파생시키는 시행착오는 적어도 교육계에서만은 절대로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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