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보험 정보 관리,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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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보험 유관 기관들이 고객들의 질병·사고 기록 등이 담긴 보험 정보를 제멋대로 활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뿐 아니라 대리점, 보험설계사까지 보험 정보를 수시로 볼 수 있게끔 방치해 왔다. 보험 정보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는 기관들이 보험업계를 이끌어온 것 아닌가.

 금융감독원은 최근 승인 범위를 초과해 보험 정보를 활용해 온 보험개발원과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에 기관 주의 조치를 했다. 보험개발원은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보험사가 텔레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제휴업체 회원의 보험계약과 사고 관련 정보 2422만 건에 대해 일괄 조회를 요청한 사항을 승인했다. 하지만 해당 제휴업체가 고객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423만 건의 보험계약 정보가 무단으로 보험사에 넘어갔다. 또 보험개발원은 보험정보망 이용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직접 보험사가 관리하게 함으로써 보험대리점이나 설계사가 고객 정보를 조회할 수 있게 했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지 않은 고객 정보를 활용해 오다 적발됐다.

 그간 보험개발원은 “보험 소비자의 권익 보호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역시 소비자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정보 관리 실태는 이러한 다짐들이 한낱 허울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험 정보는 일반적인 개인 정보와 달리 질병·수술 내역, 사고 이력 등 민감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한번 외부로 빠져나가면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그 중요한 정보를 어떻게 그토록 소홀하게, 무책임하게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보험개발원의 경우 기강 해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당 기관들은 지난해부터 보험 정보 일원화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과연 그들에게 계속 보험 정보를 맡겨도 되는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금융감독 당국도 이 물음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관리 시스템 전반을 철저히 재점검함으로써 소비자 신뢰를 되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