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 방소 계기로 살펴본 정상 회담 그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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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냉전 시대가 「가열」하기 시작했던 1950년2월 「윈스턴·처칠」의 선거 연설에서 신조어로 생겨난 후 그 실효성 때문에 그 동안 줄곧 논란의 대상이 돼 왔던 「정상 회담」이 이번「닉슨」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미·소 사이에 전후 벌써 9차례 째 거론되고 있다.
흔히 정상 회담을 가리켜 18, 19세기 「유럽」군주들의 대 향연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꼬집는 사람들도 있다. 「드골」은 『정상 회담은 외교도 아니고 협상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선전을 위한 「토너먼트」에 불과하며, 회담의 주창자들이 노리는 것은 회담 상대방이 아니라 회담 상대방의 국내 여론』이라고까지 극언했다.
그러나 정상 회담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좀 더 논리적이다. 「핵 혁명」시대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전통적 외교가 형편없이 낡고 부적합한 까닭에 이에 대처할 「외교 혁명」이 필요해 졌으며 정상 회담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외교 방식이라는 것이다
정상 회담 찬성론의 또 한가지 재미있는 근거는 소위 「거인」이론. 「정상」이란 단어가 의미하듯 마치 「올림퍼스」산 위 천상에 당당히 군림, 고위 외교관, 관리도 버리지 못하는 편견과 편파성을 떨쳐 버리고 인간의 운명을 진실로 이상적인 방향으로 인도 할 수 있다는 다분히 이상주의적인 주장이다.
특히 냉전 시대에 서방측에 의해 정상 회담이 꾸준히 추구된 것은, 주요 냉전들이 공산 지도자들의 서방 이해 부족의 결과라는 판단에서였다. 지난날의 그들 역사와 「이데올로기」에 집착한 공산 지도자들이 서방측에서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는 망상을 갖고 있는 한, 정상 회담으로 그들 오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상 회담 개최의 또 다른 이유는 『소련 안에서 얘기할 상대는 실권자 한사람뿐』이란 생각.
철저한 중앙 집권의 소련에서는 외교 대표들에 대한 통제가 극심하므로 막중한 문제는 비교적 자유로운 재량권을 갖고 있는 집권자와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권자와 직접 협상을 벌이면, 하급 외교관으로부터 얻어낼 수 없던 소련 정책 변경을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최소한 과거 20년 동안 군사·과학의 발전은 국제 정치의 성격을 변경시켜 놨고, 고식적·전통적 외교는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 무기력 한 까닭에 「외교 혁명」이 불가피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렇다 할 결실도 없으면서 강대국간에 정상 회담이 꾸준히 열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세의 하나인 듯.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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