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구제역 백신 맞혀 피해 본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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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11년 의무화된 돼지 구제역 백신접종을 놓고 정부와 양돈농가가 맞서고 있다. 정부는 “2010년 사태 같은 대규모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접종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양돈농가는 “접종부위 고기가 변해 피해가 큰 데다 백신 효과 자체도 의문”이라며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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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배기운(민주당) 의원과 대한한돈협회 등에 따르면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돼지 두 마리 중 한 마리에게서 주사 맞은 부위가 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축해 보면 주사를 놓은 목 부근에 고름이 괴어 있거나 피하지방이 변질된 식이다. 배 의원과 한돈협회가 한 대형 육가공업체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8%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 현재 변질된 고기를 잘라내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백신 주사 때문에 잘라내는 고기가 한 해 약 1만1000t, 1300억원어치에 이른다. 이는 고스란히 양돈농가 피해로 이어진다. 농가들이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이유다.

 양돈농가 쪽에서는 또 “백신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올해 백신을 맞은 출하용 돼지 중 항체가 형성된 비율이 농가별로 22~4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역시 배 의원과 한돈협회가 공동 조사한 결과다. 대략 3분의 2 정도에서 백신 접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국내 양돈농가들은 구제역 백신 접종에 마리당 2000원씩, 한 해 2000만 마리분 400억원을 지출하고 있다. 돼지 구제역 백신은 영국 제약사가 만든 것을 국내 업체가 수입해 팔고 있다.

 백신 효과가 떨어지고 고기 일부가 변질되는 데 대해 미국 미네소타대 주한수(수의학) 교수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지 않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소 구제역 백신을 돼지에게 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소와 돼지는 서로 조직이 달라 고기가 변하고 백신 효과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주 교수는 학술회의 참석차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돼지 전용 구제역 백신은 개발돼 있지 않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등 2010년 구제역으로 홍역을 치른 아시아지역 국가들은 돼지에게 소 구제역 백신을 맞히는 실정이다. 구제역이 잘 나타나지 않는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는다.

 백신에 대해 정부는 입장이 다르다. 농림축산식품부 김태융 방역총괄과장은 “고기에 이상이 생기고 백신 접종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축산 농가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주사를 놓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수의사가 모자라 상당수 양돈농가에서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데다 주사바늘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원칙 같은 것을 지키지 않고 바늘 하나로 10마리까지 주사를 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지난해 농림축산과학원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공동 조사한 결과 백신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했다. 또 “백신 접종을 포기하면 2010년 같은 구제역 사태가 왔을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주한수 교수는 “현장에서 백신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농가에 피해까지 준다면 다른 대책을 찾아봐야 한다”며 “고기가 많은 목 부위가 아니라 장기가 몰린 배에 주사를 놓는 방법 등을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에서 소·돼지에 대한 백신 접종은 2010년 12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전국에서 돼지 331만 마리와 소 15만 마리 등 347만 마리를 살처분하게 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이듬해 1월 의무화됐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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