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의 보따리와 정가의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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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설명하러온 사람이니 미국정부 견해를 듣기만 했습니다.』 『유익했다고만 써주시오.』
미·중공 정상회담 후 「닉슨」 미 대통령의 「스페셜·엔보이」 자격으로 2일간 방한했던 「마셜·그린」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와의 회담결과를 김용식 외무와 김동위 구미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북경회담에 관한 「브리핑」을 위해 「그린」 특사는 아주 11개국을 순방하는 가운데 지난 1일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다녀갔다.
「그린」 특사가 북경회담에 관한 미국정부의 「브리핑」 사절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미 국무성 내의 위치와 역할로 미루어 보아 단순한 「브리핑」 이상의 얘기가 오고가지 않았느냐는 관측이 나들고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그린」 특사가 ▲미·중공 회담에서 한국문제에 관한 비밀흥정은 없었다 ▲미국은 대한 방위공약을 준수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린」이 떠난 후 이들의 표정에서 썩 명랑한 분위기는 읽을 수 없다. 이것은 고위관계자 말마따나 『지금까지는 별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우리 국익을 어떻게 미국 측에 반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린」 특사는 지난 1일에는 의무장관 공관에서 김 외무와 2시간40분간, 2일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1시간15분간에 걸쳐 얘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그린」 특사는 2일 박 대통령을 의례적인 예방만을 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갑자기 회담으로 바꾸었다. 이 때문에 김 외무와 약속됐던 2차 회담은 취소됐고-.
일련의 회담에서 어떤 얘기가 교환됐는지는 외무부 관계자들이 함구하고 있어 깊은 내용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김 외무와의 회담은 「그린」 지사가 먼저 북경회담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다음에 김 외무가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여기서 우리정부가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은 미·중공 공동성명의 배경 이외에 ▲한국문제에 관한 막후논의가 있었느냐는 것과 ▲북경회담과 관련한 미국정부의 대 한 정책 방향 등이었다는 얘기다.
외교관 측근들은 미국정부가 「그린」 특사를 통해 미·중공 화해정책이란 큰 테두리 안에서 한반도 주변의 긴장완화를 위한 미국의 대 한 정책방향과 그에 따른 한국의 외교시책에 관한 의견도 내놓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것은 미·중공 공동성명 속에서 미국정부가 판문점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간의 대화를 지지한다고 한 점으로 가능한 해석인 것 같다.
「그린」 특사는 「홍콩」 총영사 재직 중에 이미 「케네디」 행정부에 미·중공간의 관계개선을 건의하는 정세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한편 장래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그린」 특사와 격의 없는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린」씨는 「4·19」와 「5·16」당시 주한대리대사를 지낸 한국 통, 「그린」 지사는 이 일에 앞서 『미국은 우방의 자체방위 능력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해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낳고있다.
「그린」 지사는 북경회담에서 한국문제에 관한 비밀흥정은 없었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지만 「닉슨」 중공방문이 장차 한국문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전개되리란 보장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외무부 고위관계자들은 장래의 문제에 신경을 쓰면서 ▲미국이 한국문제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반드시 사전협의가 있어야한다. ▲앞으로 미국의 대 「아시아」정책 수행에 있어 우리 국익을 최대한으로 살리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쏟고있다.
정부·여당 간부들은 「그린」특사 일행이 대만으로 떠난 같은 시각인 2일 하오 2시부터 1시간동안 청와대에서 중앙정보부가 취합 분석한 미·중공회담에 대한 해외논조를 「브리핑」 받았다.
그러나 이 회의에선 「그린」 특사가 무엇을 얘기하고 갔는가엔 아무런 설명이나 보고가 없었다. 다만 백남억 당의장만이 연석회의가 열리기 전에 청와대로 들어가 박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국제정세를 얘기했다고 한다. 따라서 정부의 외교 관계자 외엔 당에서 백남억 당의장만이 「그린」의 얘기를 들어 알고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다.
연석회의가 끝난 뒤 공화당 간부들은 오는 13일 의원「세미나」에 「닉슨」의 중공방문 결과를 당국자가 「브리핑」하도록 하고 의원 몇 명씩 「그룹」을 짜서 연구 「테마」를 줄 때 중공문제와 일본에 대한 의원외교를 주제로 줄 계획.
그러나 역시 의원「세미나」에서도 연석회의에서 내놓은 일반적인 정세 「브리핑」 일뿐 「그린」의 보따리는 풀어놓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신민당에선 「그린」 특사가 말해주었을 미·중공 수뇌회담서의 한국문제 토의내용을 외무위에서 비공개 회의를 해서라도 들어야겠다고 벼르고있다.
공화당이 국회 본회의엔 출석치 않기로 했지만 외교·안보 문제를 다무는 상임위 활동엔 참가하기로 해서 외무위는 야당이 소집을 요구하면 성립될 전망이 섰기 때문.
그러나 비록 비공개로 열린다 해도 외무위서 「그린」이 주고 간 내용의 어느 정도가 공개될지는 알기 어렵다. 외무위의 야당소속 의원 중에는 몇 사람의 미국 통이 있다. 결국 이들은 다른 「채늘」로 미·중공 회담서의 한국문제 토의 내용을 듣고 외무위에서 이 내용을 확인하려든다면 그런 선까지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 <길종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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