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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애먼 헌법재판소 왜 끌어들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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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그제 낮까지 쓰려던 글은 ‘국회선진화법의 운명이 민주당에 달렸다’였다. 최루탄·해머 국회란 비상사태를 끝내기 위해 야당을 배려한 비상조치에도 야당이 걸맞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법 개정 압박이 거세질 것이란 요지였다.

 역대 국회는 그동안 5분의 1, 4분의 1, 3분의 1, 2분의 1, 그리고 3분의 2 등 분수의 세계 속에서 지지고 볶고 했었다. 회의는 의원 4분의 1의 요구로 소집되며 개의는 5분의 1이 있어야 하고 가결을 위해선 2분의 1, 민감한 사안의 경우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식 말이다.

 지난해 5월 새로 5분의 3이 추가됐는데 새누리당의 주도였다. 강행처리의 시발이었던, 국회의장이 의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는 권한을 사실상 폐지하는 대신 5분의 3이 동의한 안건에 대해선 자동상정되도록 했다. 이른바 안건 신속처리제로 미 상원의 의사진행방해 종료 기준(재적 60%)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미국 사람들 눈에도 이상해 보였나 보다. 이달 초 강창희 국회의장은 미 의회조사처(CRS) 인사들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했다고 한다.

 ▶마크 매닌 연구원=과거 몸싸움으로 악명 높았던 국회가 (국회선진화) 법안을 통과시킨 걸로 안다. 그로 인한 어려움은 없나.

 ▶강 의장=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부작용을 지적하는 여론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메리 메즈넥 조사처장=여야 의석이 엇비슷한데 60%의 동의를 확보할 수 있나.

 ▶강 의장=시간과 인내심의 문제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일 수 있다. 지금이 과도기다. 경험이 쌓이고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선진화된 입법 관행이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강 의장이 진정 그리 믿는지는 모르겠다. 대화·타협 문화가 여전히 요원하기에 말이다. 요즘 들어 의사장을 점거하지도 해머를 휘두르지도 않아도 되는 민주당이 ‘처우 개선’에 부응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제 낮 새누리당이 이 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달라졌다. 야당 이상으로 여당도 문제라고 여겨졌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 법이 통과된 건 지난) 레임덕 국회에서 절반 이상이 공천받지 못하거나 낙선한 분들이 투표한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개인 최경환은 그리 말할 순 있겠다. 기권했으니. 하지만 원내사령탑으로선 계면쩍을 게다. 당시 당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도, 지금 청와대(이정현)와 정부(유정복), 당(황우여·이혜훈·서상기)에서 정권의 얼굴로 활약하는 인사들도 찬성표를 던졌다.

 “법 탓에 국회가 마비됐다”는 주장도 하는데 이번 국회 들어 17개월 동안 632건의 법안을 가결했다. 17대(1915건)·16대(948건)의 4년 기록 못지않다.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중점 주요 법안이 7개 정도였는데 6개 정도가 이번에 통과됐다”고 말한 일도 있다. 보통 엄살이 아닌 게다.

 민주당의 들락날락이 거슬렸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야당의 장외 선호 습속이 개선되지 않은 것이지 과거보다 악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올해도 해 넘겨 예산안을 처리할까 염려할 순 있는데 이 법에 의해 내년부터 예산안만큼은 자동상정되게 돼 있다.

 사실 국회선진화법 시대엔 야당 못지않게 여당도 달라져야 했다. 진정 정치를 해야 했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뒷짐 지고 남 탓하기에 바빴다. 야당을 탓하다 요즘엔 자신들이 “적격”이라고 엄호했던 총리·부총리·장관을 탓한다. 급기야 제 손으로 만들고 널리 생색냈던 법을 탓하는 걸 넘어, 야당과 풀어야 할 일은 애먼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려고 한다. 염치 있는가. 민주당이 법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그럼에도 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건 분명 새누리당이다.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