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각서 뛰어내려 산 병상의 청년이 화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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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연각 호텔 화재 때 3층에서 지상으로 뛰어내려 생명을 건졌던 행운아 배광웅씨(30·대연각 호텔 직원)가 채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웨딩·마치」를 올렸다.
12일 하오 수도 예식장(을지로 5가)에는 수술할 때 박박 깎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사모관대 차림을 한 신랑 배 씨와 이에 맞추어 족두리 차림의 신부 주미리양(25)이 동료들과 많은 하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년 가약을 맺은 것.
이들 한 쌍의 원앙은 공교롭게도 불이 난 날 이미 청첩장이 일본에 계신 아버지와 월남에 있는 가족한테까지 발송됐고, 또 여러 하례객들을 괴롭힐 수 없어 택일을 어기지 않고 이날 결혼식을 강행한 것.
배씨의 어머니 김오길씨(61)는 『네가 살아있는 것이 천운이니 결정된 날에 혼례를 치르라』고 말하여 머리상처를 꿰매느라고 머리도 박박 깎는 등 흉한 얼굴을 생각하여 결혼식을 늦추자는 자신의 고집이 무참히 깨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예식이 끝나자 배 씨 부부는 약속대로 곧 입원 중이던 이주걸 신경외과로 직행했다.
주치의는 신혼여행도 못 가는 새 부부를 딱하게 생각했던지 201호실을 신방으로 내주었다.
이날 보금자리에든 신랑 배씨는 『저 세상에서 맺을 뻔한 인연을 맺게 됐으니 더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고 신부 주양은 『얼떨떨해서 행복한지 뭔지 전혀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홍조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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